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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기부천사.

오늘도 검은색 머리끈을 왼손 손목에 차고 슥슥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수리 쪽으로 모은다. 정성스레 모은 머리카락 한 묶음을 왼손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말아 쥐고 왼손 손목에 있는 머리끈을 오른손 검지로 자연스럽게 끌고 와서 한번 묶어주고 한번 꼬아서 머리 묶음을 통과시켜 두 번 묶어주고 또 한 번 꼬아서 말총머리로 묶을지 똥머리로 말아 올릴지 고민하다가 똥머리로 결정한다. 말총머리를 하면 의자 등받이에 종종 끼여서 머리가 뒤로 젖혀진다. 숙달된 손놀림으로 예쁘게 똥머리를 만들어주고 상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다. 몇 개월의 투병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의 모습은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15년 동안 갇혀서 지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머리카락이 기른 김에 더 길러서 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언젠가는 장발로 길러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흰머리가 많아지면 더 이상 머리카락 기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의지가 불타올랐다. 찾아보니  25cm 이상이 되어야 기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묶은 머리카락 길이가 25cm 이상이 되어야 하니 결국 허리선 정도까지는 길러야 가능하다. 대충 나의 머리카락이 자라는 시간으로 보아 어림짐작으로 3년 이상은 길러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2년 정도 길러서 어깨라인을 가볍게 돌파하였다. 


머리 기부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니 참으로 쉬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단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 머리카락을 기르기로 마음먹었을 당시 투블럭컷에서 시작해서 윗머리카락이 옆과 뒷머리카락에 비해 10cm 이상 더 길다. 그래서 지금은 윗머리카락이 한여름 아스팔트의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리며 공중에서 춤을 춘다. 머리카락이 24시간 정전기가 일어난듯하여 그 모습이 가관이다. 내 모습을 보고 사는 아내의 눈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가끔 얼굴에 닿는 머리카락이 거슬려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 귀 뒤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아내의 미관이 찡그려지며 혀를 끌끌 찬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새초롬한 표정을 더해 일부러 더 하곤 한다.


그리고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이 여간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냄새가 나고 비듬이 엄청 생기며 떡이 져서 쉰내가 난다. 머리카락이 짧았을 때야 그냥 수건으로 대충 털면 금방 말랐는데 드라이어로 말려도 한참이 걸리니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이다. 여자들의 불편함과 수고스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잠자리에 들 때도 베개 위로 머리카락을 잘 정리하고 자야 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종종 잠결에 내 머리카락을 보고 귀신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라서 경기를 일으키며 깬 적이 있다. 그리고 자다가 입 속에 머리카락이 들어가 아침에 머리카락이 침 범벅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냄새가 정말 XXX 똥내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잘 정리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머리카락을 같이 씹으면 정말 입맛이 뚝 떨어진다. 내 머리카락인데도 참으로 기분이 나쁘다. 가끔 아침에 약을 삼키기 위해 물 마실 때 머리카락이 함께 들어오면 너무 불결하다. 알약이 저주받은 느낌이다. 최악은 카페라테를 마실 때 몽실몽실한 우유 거품에 머리카락이 푸욱 담기면, 샤워를 하고 나면 배수구에 비누거품과 머리카락이 뒤엉켜있는 것이 연상되어 비위가 상한다.


물론 몇 가지 이점도 있다.

신혼 초에 아내가 긴 머리카락으로 누워있는 나의 얼굴에 장난을 치곤 했다. 은근슬쩍 닿는 그 느낌이 얼마나 소스라치는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가끔 아내가 귓바퀴 정리를 해달라며 내 무릎을 베고 누우면 그때의 복수를 하곤 한다. 양팔을 허공에 파닥거리며 허우적대는 모습이 꿀 잼이다. 

그리고 공방에서 곱게 머리카락을 말아 올리고 작업을 하고 있으면 손님들의 호기심을 더욱 끌 수 있다. 뭔가 신비스러운 작가의 이미지가 플러스가 되는 듯하다. 물론 시선이 느껴지더라도 모른 척하고 더욱 작업에 몰두한 척을 한다.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기부라는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나의 머리카락들이 소아암 환자들의 가발 제작에 사용된다는 점이 무척 보람찬 일이다. 뇌출혈 이후에 대부분의 삶을 아내에게 기대 오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스스로 내 인생을 견인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꿋꿋하게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아마 아내도 겉으로는 혀를 끌끌 차도 속으로는 내가 머리카락 기부천사가 되기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6개월 정도만 더 길면 목표를 완수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희끗해지는 그날까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살겠다.  

그때까지 

“여보! 조금만 참아주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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