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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게임중독.

오늘도 어김없이 게임 점수 인증 사진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매일매일 게임에 빠져 사는 듯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보통 기록을 깨면 인증을 하곤 하는데 이건 점수에 상관없이 인증을 한다. 그리고 ‘건강합시다’, ‘쉬엄쉬엄’, ‘여유를 가져요’, 등등의 메시지를 남긴다. 수상인명구조요원을 양성하는 강사님의 sns 계정이다. 아내와 나는 수상인명구조요원 라이프가드 교육에서 만났다. 그때 강사님이신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머리를 다치셔서 지금은 병원에서 재활을 하고 계신 듯하다. 매일매일 게임 사진을 업데이트하시는 것을 보니 2018년의 치열했던 내가 떠오른다.


2018년은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재출혈이 심해서 혈관종이 2배 이상으로 커져버려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재출혈부위의 부종이 안정되어야만 가능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스테로이드를 지속적으로 먹으며 부종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눈만 뜨면 화상을 입은듯한 신경통증과 복시, 이명에 시달려야 했기에 눈을 뜨는 게 싫었다. 그리고 스테로이드의 각성효과 때문에 잠드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겨우 잠이 들어도 2~3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나의 삶은 말 그대로 불지옥이었다. 게다가 감마나이프 수술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 증상들이 없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죽을지 고민했었다.


언년이…… 그녀는 하루 종일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때론 강한 적을 만나 많은 대미지를 받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녀에게는 체력과 마나를 채워줄 물약이 있으니.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아 매 순간 강해지고 있다. 

나의 mmorpg게임 캐릭터 이름이다. 자동사냥 기능이 있어서 내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하며 아이템도 모은다. 내가 할 일은 가끔 접속해서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확인하고, 모은 아이템들을 정리하여 가방을 비워주기만 하면 된다. 오랫동안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복시가 있는 나에게는 최적의 게임이다. 설렌다. 내일은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해주는 소소한 기쁨이었다.

언젠가부터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사라져 있었다. 아프고 힘든 시간인 건 변함이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견뎌내고 있었다. 언년이 덕분에…… 물론 나는 현질을 1원도 하지 않아서 언년이의 성장이 느리긴 했지만 꾸준히 성장해주고 있는 그녀가 기특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지금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게임들을 즐기는 나는 어떤 취급을 당했는가? 그거 할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보라며 등짝을 무수히 희생당했고, 시간이나 허비하는 비생산적인 취미를 가진 철없는 성인 취급을 당해왔다. 그러나 뇌출혈로 힘들었던 시기에는 무엇보다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활동이었다.

아직도 살아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삶에는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알게 된 것은 현실은 불공평하고,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지나친 열정으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불혹의 나이가 되면 큰 깨달음을 얻거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게임의 설렘을 알아버렸다. 지금은 김주부와 김작가의 역할이 즐거움과 보람을 더해주고 있다. 앞으로 어떤 설렘들이 더해질지 기대된다. 물론 사그라드는 것들도 있을 테지만 앞으로의 일일뿐, 지금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오늘도 약속된 시간에 나의 전우들과 힘껏 싸우러 나가볼까 한다. 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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