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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5분이면 충분하지.

호주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이 있는 단체 카톡방이다. 호주로 떠나던 날 친구 한 녀석이 건네준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자기 명함, 여자 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 떠나는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도 아니고 자기 여자 친구와 찍은 스티커 사진…… 

왜 이 스티커 사진을 자신에게 줬는지 의문이라면 사진을 보낸 것이다. 나머지 친구들은 온갖 염문과 스캔들을 만들어 낸다. 카톡이 갑자기 활기차다. 

스티커 사진을 준 당사자는 너는 그것을 왜 아직도 간직하고 있냐며 반문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이 두 녀석의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른다.

 

지금부터 호주로 간 친구를 호주라 하고 사진을 준 친구를 스티커라고 하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는 재수를 하기 위해 부산에서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스티커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서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스티커의 집이 학교와 가까워서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 녀석의 집은 단독주택이었는데 특이하게 대문 위쪽 구석 뒤편에 보이지 않는 위치에 비밀 스위치가 있었다. 열쇠가 없어도 그 스위치를 누르면 대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 스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작 스티커가 집에 없어도 들어가서 어머니께 인사도 그리고 스티커 방에서 스티커를 기다리곤 했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늘 있는 일이라 별로 놀라지도 않으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느 날 호주가 재수 생활이 힘들었는지 가출을 결심하고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고 다녀 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나 보다. 갈 곳을 찾아 헤매다 생각해낸 곳이 스티커의 집이었다. 스티커는 지금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부산의 스티커 방이 비어있다. 늘 그랬듯이 당당하게 대문을 따고(?) 들어가 스티커 없는 스티커 방에서 지친 몸을 달래고 있었다. 이 일을 모르시는 스티커의 어머니께서는 외출하고 돌아와 아들의 방에서 호주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셨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스티커의 어머니께서는 따뜻한 밥을 지어 내어 주시고 호주를 다독여 주셨다고 한다. 스티커는 뒤늦게 어머니께 그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가출한 지 하루 만에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큰 교훈을 얻은 호주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작 가족들은 호주가 가출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소 외박을 자주 하던 녀석이라 하루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던 것이다. 호주도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호주의 가출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온 거지 어떻게 그게 가출이냐는 것이다. 호주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아냐며 버럭 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유난히 호주와 스티커의 에피소드가 많다. 호주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스티커의 기숙사에 상주하며 스티커의 룸메이트와 베스트가 되고 스티커의 동아리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치며 친목을 다졌다고 스티커가 이야기해주었다. 지가 자기보다 동아리 사람들이랑 친하다며…… ㅋㅋㅋㅋㅋㅋㅋ

 

한 번은 스티커의 기숙사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호주가 마치 자기가 다니는 학교 인양 방귀경을 시켜주고 사람들을 소개해주었다. 

 

추억을 쌓기 위해 한 과목만 서로의 기말고사를 대신 치기도 했다. 경악을 할 일이다. 지금은 둘 다 잘 풀려서 다행이지만 아찔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 이 둘의 에피소드에 내가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 들기도 한다.  

 

아마 스티커는 한국을 떠나는 호주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쉬움을 전한 것이라 여겨진다. 생뚱맞은 스티커 사진을 줘서 계속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단체로 카톡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지 않는가~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영화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강직성 척추염에 걸려 힘들게 지내던 20대를 버티게 해 준 나의 보물들이다. 이 글을 빌어 그들의 똘끼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제발 다들 건강하길 바란다. 지금은 예전처럼 일상을 공유하며 추억을 쌓고 즐거워하진  못하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삶에 여유가 생겼을 때 꼭 함께 모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이면 늘 같은 추억을 도돌이표처럼 이야기하겠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반가움이 5분을 넘기진 않겠지만, 그 짧은 순간의 기대감에 나는 설렌다. 

 

호주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못하게 해서 집에만 있다 보니 둘째를 가지게 되었단다. 축하한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때문에 출산율이 좀 올라갔나?? 그리고 요즘 비트코인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대박이 나서 여행을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호주에서 우리 집 앞까지 지하철을 뚫겠다던 약속 꼭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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