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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제갈량인가~

오랜만에 오픈하자마자 손님이다. 6분이 들어왔는데 같은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이 점심 먹고 티탐임을 가지려고 오셨나 보다. 들어오자마자 카페 칭찬을 하신다. 

“너무 이쁘다.!”

“캐릭터 너무 귀엽다.”

이런 리액션들 굉장히 애정 한다. 

“저희들 백신 다 맞았어요~~.”

미리 자진신고도 하시고 굉장히 예의 바르시다. 근래 처음 오신 손님들 중에 최고다. 잘하면 당분간 단골손님이 될지도 모른다. 아내는 영혼을 듬뿍 담은 자본주의 미소로 친절한 메뉴 설명과 응대를 한다.

 

법카여서 그럴까?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이것저것 시키신다. 이 또한 너무나 바람직한 상황이로구나!! 아내도 기분이 좋아 보였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아내는 숙련된 솜씨로 메뉴를 만들어 서빙하면서 QR코드로 방문자 확인까지 하고 공방으로 들어온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장사를 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손님들이 있다. 긍정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예의 바르시면서 유쾌하신 분들. 뭔가 에너지의 파장이 맞는 느낌이다. 오늘은 시작이 좋구나!! 

 

그런데 갑자기,

쾅!!

“여어다 차를 세우면 안되지이~!!!!!!!”

주인도 손님도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상황을  와장창 깨버리는 거친 경상도 아줌마의 사투리 소리다. 뭔가 화가 가득 차 있는 공격적인 말투가 마치 사자후 같다. 깜짝 놀라서 모두가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손님들이 차를 우리 카페 앞이 아닌 골목 초입에 주차를 해두셔서 골목 안쪽으로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골목 초입에 있는 건물에 거주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얼른 나가서 여쭤보았다. 그런데 골목 안쪽에 사시는 분이라 하신다. 그럼 차를 잠깐 다른 곳으로 빼드리면 되지 않는가~

 

이 좁은 골목에는 안쪽 두 집에 각각 큰 SUV 차량이 있는데 항상 주차 때문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항상 차가 없는 우리 건물 앞에도 본인들의 차를 주차하곤 했다.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괜히 그들의 갈등에 기름을 붓고 싶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배려를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카페 손님들이 차를 주차하더라도 빼 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늘 그렇게 해왔는데 저렇게까지 성질을 낼 필요가 있나?

 

최근에 골목 안쪽에 거주하는 부부가 이사를 가고 비어있었는데 시부모님들이 비어있는 집에 한 달 정도 거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골목의 사정을 잘 몰랐나 보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에 핸드폰 번호도 있는데 저런 식으로 행동해도 되는 건가? 

 

허둥지둥 차주님이 차를 빼러 가자 나머지 손님들이 우왕좌왕하시며 차도 다 마셨으니 가자고 죄송하다며 떠나신다. 

아…… 다시는 오지 않으시겠구나……ㅠㅠ 

갑자기 그동안 우리 건물에 말도 없이 주차하던 상황들과 남의 건물에 오줌을 갈겨대던 그 부부의 아들이 생각나면서 열불이 오장육부를 타고 폭발하려고 했다. 오냐!! 잘 걸렸다. 비록 나보다 연장자지만 이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따질 것은 따져야겠다. 비장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려고 윗입술을 때려고 하는 순간! 아내가 한 발자국 먼저 내딛는다.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이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주차를 어떤 방식으로 했으며, 차가 없는 우리 부부가  어떤 배려를 했는지 차분하게 말씀드린다. 얼굴에 화가 가득했던 그 아주머니는 시선을 저~ 멀리 하늘 어딘가에 두면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하신다. 너무 성급하게 성질을 낸 것이 민망한가 보다. 갱년기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배려를 하자며 아름답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성숙해 보였다. 어느 순간 나의 화도 가라앉아 있었다. 다시 카페 공방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자리에 앉는 순간 표정이 싹 바뀐다. 너무 억울하다며 손님들을 그렇게 보내버려야 했던 상황과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배려들이 이렇게 돌아오냐며 부들부들 떤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지만 나와 다르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구나. 진정 그녀는 지성인이며 어른이다. 

그런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손님들이 그렇게 도망치듯이 가야 했던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겠다면서 공방을 나선다. 그래!! 따질 것은 따져야지!! 내가 뒤를 받쳐주마!! 

 

둘이서 저 안쪽에서 막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아주머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세상 쿨하고 나이스 한 교양 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먼저 한마디 한다.

“혹시~이다음에 손님들 차 댈 때 없으면 여기에 대도 돼요~~ 오.”

“아,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시 이성이 급하게 돌아온 아내는 오히려 감사인사를 보낸다. 비록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상황이 역전된다. 물러서야 할 때이다.

 

만약 내가 먼저 화를 내며 따졌다면 큰 말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화가 나면 나도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서울 방화동 어느 골목에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말싸움을 했다면…. 아마 온 동네가 시끄러워졌을 것이다. 덤으로 우리 카페와 부부에 대한 거친 인상을 남기며 동네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싸움이 일어났다면 갑자기 올라오는 혈압에 재출혈이 되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뒤에 잠깐 냉정함을 잃었지만 아내의 침착한 첫 대응으로 인해 오히려 얻은 것이 많다. 

 

그들에게 이것이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다 라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손님들을 위한 여분의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응급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악조건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이득을 취하는 지략가 제갈량이 겹쳐 보였다. 오늘도 아내를 보며 지혜를 배우고 있다. 

그녀는 바보온달을 장군으로 업그레이드시켜준 평강공주의 사주를 타고났다고 했다. 그 사주풀이를 해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용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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