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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응답하라! 1988!

반쯤 눈을 뜬 상태… 이것은 일어난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 어딘가……

자의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깨톡!!

 

뭐지…… 한전인가?? 광고인가?? 깨톡에서 나를 먼저 반겨주는 사람은 아내 말고는 여러 기업들의 광고와 세금 나가는 알림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무시하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깨톡!!  깨톡!!  깨톡!!

 

응? 이렇게 연속으로 울린다는 것은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손을 뻗어본다. 으~~~~ 며칠 전 코로나 백신 화이자 1차를 맞았더니 뻐근하다. 강직성 척추염의 뻣뻣함과는 다른 통증이다. 하지만 이 시련을 이겨내고 나의 아이폰8을 잡아 들었다. 나에게 칭찬을~~ 이런 소소한 위기극복에도 셀프 칭찬을 해주기로 했다.

 

카톡을 확인해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부름이다. 어리고 생기 넘쳤던 나의 모습과 몇몇 친구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희귀 사진을 함께 올린다. 알고 보니 반 친구들을 다 불러 모으고 있었다. 연락처는 파도를 타고 단톡방을 부풀리고 있었다. 오랜만이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정겨운 부산 사투리~~

나의 고등학교 1학년 3반은 좀 특별하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을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문집이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국어 선생님이시자 책도 내신 분이셨다. 체벌과 욕설이 난무하던 나의 학창 시절의 한줄기 빛 같은 분이셨다. 라떼는 체벌이 당연한 시절이었으니깐~~ㅎㅎㅎ 선생님께서는 학기초부터 모둠 일기를 쓰게 하셨다. 6~7명 정도로 모둠을 만들어서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를 쓰는 것이 규칙이다. 내용은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고 나머지 모둠원들은 그 글을 읽고 옆 페이지에 요즘 말로 댓글을 써주었다. 항상 교실 맨 끝에 모아두었기 때문에 다른 모둠의 일기도 읽어보고 댓글을 쓸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뭔 일기냐며 속으로 시큰둥했지만 하나둘씩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특별한 일이 되었다. 말로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마음을 나누기도 했고, 때로는 오해를 푸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물론 글 때문에 갈등도 생기기도 했지만 이런 여러 상황들을 함께 고민, 공감하는 일이 특별한 경험이었다. 17살의 우리들의 마음들이 모인 이야기들은 수십 권의 공책을 메웠다.

 

선생님께서는 이 원석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들이 다듬어 문집을 만들도록 유도하셨다. 문집 제작의 중심이 되는 친구들이 수백 개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겨우겨우 걸러내서 한 권 분량으로 만들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정말 100% 우리들의 손으로 만들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틈날 때마다 각자가 맞은 일을 해내었다. 미술부였던 나와 2~~3명의 친구들이 표지그림과 삽화를 맞아서 그려 넣었다. 표지는 학우들의 추천으로 한 명을 모델로 정해서 그려 넣었다.

 

문집이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못한다. 어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들끼리 무엇인가를 이뤄본 것이 처음이었다. 물론 선생님의 동기부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말이다. 문집은 지금까지 애지중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가끔 꺼내서 보기도 한다.

 

그들이 다시 함께 모여보자 한다. 최대한 연락이 닿는 사람들까지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물론 코로나는??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들었다. 물론 나는 지금의 몸상태로 참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 이렇게 아쉬운 느낌이 든 적이 없었다. 누군가와의 만남보다는 나의 통증과 불편함이 우선이었는데  이번에는 지금의 불편함이 원망스럽다. 왜 이런 기분일까?……

 

단톡방에는 모두들 아빠가 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운다. 그들의 대화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냥 그들의 대화를 관찰하며 나의 침울함의 근원을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들과 같이 아이의 아빠가 아니라 대화에 참여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몸이 온전하지 못함이 알려질 수 있어서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상관없다. 

 

……

 

그들이 그립다기보다는 그때의 내가 너무 좋았다. 17살이었던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 마음에 가장 밝은 해가 들어왔던 시간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가장 따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렘이 컸나 보다.

 

언젠가는 부산에서 그들과 함께 추억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은 보물 같은 햇살 가득한 문집을 한번 꺼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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