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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아.

나의 별명은 ‘짐승’이었다. 중학생 때 같은 반 친구가 이름을 잘못 불러서 붙여진 별명이다. 별명 때문인가??  별명처럼 운동할 때 짐승처럼 뛰어다녔고 체력이 넘쳐흘렀다. 친구들은 저놈은 보름달이 뜨면 변신할 것이라며 수군대곤 했다. 물론 변신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선천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23살에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았다. 심지어 불치성 난치병이라니…….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던 무한체력 짐승이, 건강이란 이런 것이다 를 보여줬던 짐승이…… 

 

자존심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 철저하게 아픔을 감추었다. 그 누구도 내가 아픈 사람이라고 알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내가 아픈 사람인지 의심할 정도였다. 당연히 친구들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운동으로 살을 빼기 전까지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처음 겪어보는 모닝 뻐근함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지속되는 근육통 같은 통증의 연속……. 통증으로 자세는 자연스레 쭈그리는 자세를 많이 하게 되었다. 자세가 나쁘면 통증은 심해진다. 악순환이지……

 

다행히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통증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약속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날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전에 운동을 해줘야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주로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사실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직전에 운동을 해주어야 그나마 덜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얼마나 더 건강해지려고 운동까지 하냐고 하곤 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뭔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 끝없이 계속되는 일이 얼마나 짜증 나고 고통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정말 불편하고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특히 장거리 이동은 나에게 지옥 같은 시간이다. 그때만 해도 ktx가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명절 때마다 부산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버스 같은 경우는 심하면 10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으니까…… 허리가 으드득 뒤틀릴 것 같다.

 

명절을 제외하고도 부산을 가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아버지께서 셧터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방학이 되면 항상 콜을 하셨다. 일을 도우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아무리 멀쩡한 척한다고 해도 척추염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장거리 이동이 힘든 것도 여러 번 이야기했음에도 항상 당연히 일을 도와야 한다고 여기셨다. 그것도 나는 기술이 없으니 무거운 것을 화물트럭에 들어 옮기는 일만 해야 했다. 

 

참 나도 미련했던 것이 그것을 꾸역꾸역 했다는 사실이다. 장남이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에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늘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다 보니 가족들조차도 내가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다라.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려고 꼼수를 부린다며 내가 아프다는 외침을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아프다고 뒹굴고 지랄발광을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얼마 전 티브이를 보다가 케이블에서 하는 축구 재방송 경기를 시청했다. 경기 도중에 심한 태클을 당한 선수가 아파 죽겠다며 정강이를 붙잡고 심판 앞에서 뒹굴고 죽겠다고 난리다. 결국 프리킥을 얻어낸다. 그런데 느린 화면을 보니 할리우드 액션이더라…… 그래 운동경기에서도 조금만 아파도 심판에게 온갖 몸짓과 표정으로 어필하지 않는가. 심지어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다. 아니 말해야 한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어찌 알겠는가. 텔레파시 따위는 없다. 말하자! 지랄발광까지는 아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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