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노랭이와 나.

우리 동네 길냥이들에 관심이 생긴 것은 계기가 되는 사건이 있다.

어느 날 아내와 길을 걸어가는데 옆에 뭔가가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옆을 보니 웬 노랭이 치즈냥이 무심하게 우리와 같이 걸어가는 게 아닌가. 우리를 의식하지도 않고 그냥 자기 갈 길을 느릿느릿 걸어간다. 너무 신기해서 그놈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오른쪽 뒷다리가 꺾여 있었다. 다른 길냥이들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 녀석과의 두 번째 만남은 아내가 공방에 다녀오는 길에서였다. 

집에 도착한 아내가 호들갑을 떨면서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 그 녀석이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세상 귀엽게 앉아서 냐옹 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거 아닌가. 아내가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났는데 따라올래?라고 물었더니 냐옹 거리면서 따라왔다는 것이다. 마침 집에 츄르 한 개와 단골손님께서 주신 고양이 사료가 조금 있었다. 아내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 때문에 한걸음 떨어져서 내가 츄르를 먹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츄르를 다 먹어 갈 때쯤 아내가 그릇에 사료와 물을 담아 가져왔다. 순식간에 먹어치우더니 우리를 다시 빤히 쳐다보며 연신 냐옹~거린다. 부족했나 보다. 그렇지만 줄 것이 없었다. 없다고 손사래를 쳐봐도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 망부석처럼 불쌍하게 앉아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cctv를 봤더니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가버렸다.  

 

그때부터 집에 고양이 사료를 구비해 두었다. 우리가 키우지는 못해도 집 앞에 그릇을 두고 고양이 사료와 물을 항상 채워두었다. 지나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배를 채웠으며 했다. 

 

 노랭이가 유독 신경이 쓰였던 이유는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강직성 척추염에 걸리면 골반에 천장관절에 염증이 잘 생긴다. 그래서 한때 다리를 절뚝거리면 다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누구라고 밝히기는 싫지만 어떤 인간이 나를 보고 발 병신이라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기억은 죽어도 잊히지 않는다. 종종 꿈에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노랭이를 집 근처에서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었는데 늘 그랬듯이 별 관심이 없다. 아내가 집으로 뛰어가 구비해 두었던 삶은 닭가슴살 한 줌을 들고 달려왔다. 우리는 사료와 함께 닭가슴살을 삶아 잘게 찢어서 보관해 두고 있었다. 노랭이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경계하며 먹지 않고 있었다. 좀 멀리 떨어져서 빼꼼히 보니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다 먹고는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다행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저번에 우리 부부에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간식이나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 같았다. 우리 카페 단골손님도 그 녀석에게 간식을 여러 번 주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름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닌데 괜히 대견하고 고마웠다. 

 

비록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지는 못하는 몸이지만 노랭이가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듯이 나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야겠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물론 좀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노랭이를 생각하며 극복해내야겠다. 

 

노랭이도 길냥이들도 나도 혹독한 이 겨울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평점은 믿을만한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