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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Apr 11. 2022

신경 영양 각막염에 걸리다.

4월 5일은 나에게 식목일이 아닌 강직 척추염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다. 폭발적으로 증식하는 코로나 환자들 때문에 혹시나 우리도 걸려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할까 봐 10일 정도 카페 영업을 하지 않았다. 10일 동안 돈을 벌지 못하지만 이번에는 면역억제제 주사도 맞아야 하고 피검사 결과도 나오기 때문에 병원을 미룰 수는 없었다.  


다행히 피검사 결과가 좋았다. 다행이다. 꾸준히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한 보람이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는데 또 시야가 뿌옇다. 감각이 없는 왼쪽 눈에서 눈물이 약간 나면서 뿌옇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회복이 돼서 별거 아니라고 여겼는데 오늘은 좀 오래 지속된다. 


동네에 와서도 좋지 않아서 근처 안과에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알레르기이거나 염증이 조금 생겼을 것이라 가벼이 여겼는데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병명은 너무 생소했다. 

“영양 각막증”

의사 선생님께서 지식을 자랑하듯이 설명을 해 주셨는데 내용이 꽤 충격적이었다. 뇌출혈 때문에 눈에 감각이 없다 보니 훼손된 각막의 재생이 제대로 되지 않는 병이라고 한다. 각막의 상처들이 재생되지 않아서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것이었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한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다. 그저 평소에 안약을 꾸준히 넣어주면서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상태가 더 심해지면 일정기간 동안 눈을 뜨지 못하게 아예 꿰매어서 치료를 하기도 한다는데 내 귀를 의심했다. 농담인 줄 알았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구가 괴사 하여 안구를 적출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진료 후에 네이버에는 검색을 해봐도 나오지 않아 구글에서 찾아보니 ‘신경 영양 각막염’이라고 되어있었다. 네이버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병은 또 처음이다. 


이 무슨 날벼락이……


도대체 끝이 없다. 강직 척추염을 시작으로 기형 혈관의 뇌출혈, 재출혈로 인한 마비, 감각 손실, 신경통증, 어지럼증,……. 이제는 또 눈이 문제란다. 정말 열심히 관리를 하는데 또 완치가 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화도 나고 허무하고 말문이 막혀 무너진다.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 동안 이런 식으로 병의 종류가 늘어나고만 있다. 


몇 가지 계획들이 산산조각이 난다. 도저히 계획했던 것들을 해낼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눈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게 너무나 커다랗게 다가왔다. 복시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클레이 작품 활동이 무리가 될까 봐 눈에 부담이 되지 않게 작업시간을 최대한 짧게 조절하고 있었는데 이제 뭘 더 어찌해야 하나? 남은 인생은 그냥 연명하듯 살아야 하는 것일까? 죽을 용기는 없어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데 정말 지친다. 


허탈해하는 나를 보는 아내의 마음은 또 어떠하겠는가……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또 얼마나 울었을까. 아내는 내가 없는 곳에서 장모님과 기나긴 통화를 하고 왔다.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정말 면목이 없고 이렇게 태어난 것이 너무나 싫었다. 


아내는 아마 밤에 몇 번이나 내려와서 자고 있는 나를 보고 갔을지 모르겠다. 아마 밤을 꼴딱 새웠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아내는 3 발자국 떨어져서 나를 보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공방으로 내려가 아내를 마주했다.  아내는 장모님의 전언을 나에게 들려줬다. 

아내와 나 장모님 셋이서 반드시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가자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꼭 보러 가자며 몸 관리를 잘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아내가 전해주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도 외면하던 나의 꿈을 장모님께서는 기억을 하시고 함께 이뤄보자며 나에게 살아가는 동기를 주시려고 하셨다. 뭔가가 바닥에 누워있는 나의 등을 받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생겼다. 하루에 두 가지 안약을 각각 6번씩 넣고 아침저녁에는 눈에 연고를 넣어줘야 한다. 12개의 알람 설정을 해두었다. 그리고 안약을 넣을 때마다 눈을 쉬어주고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최대한 눈을 아끼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계획했던 몇 가지 일들을 미뤄두기로 했다. 어찌 되었건 죽을 생각은 없으니 살아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장모님과 아내와 바르셀로나에 가게 되면 시원하게 한번 울어야겠다. 잘했다고 한 번 울어야겠다. 그러니 지금은 열심히 안약 잘 넣고 관리를 잘하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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