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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Sep 12. 2022

결혼 기념 10주년

어찌어찌 살다 보니 벌써 결혼한 지 10년이다. 당연히 너무나 고마운 당신이지만 그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지나간 아내의 생일날이 떠오른다. 깜짝 이벤트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심지어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주지 않아서 20년짜리 욕먹을 일을 만들어 버렸다. 고민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꼴이다. 나의 고민의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그것은 상관없다. 그 마음이 표현되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념일이 다가올수록 나의 고민은 또 커져갔다. 사실 10주년에 무조건 샤넬 빈티지 가방을 사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며 결혼하자고 꼬셨는데…… 샤넬은커녕 샤넬 쇼핑백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현실이다. 사기결혼인 셈이다…… 철컹철컹!!


뭔가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이미 그림은 그려줬고 클레이 아트를 이용한 작은 이벤트도 이미 해 버렸다. 24시간을 거의 함께 있으니 뭔가를 몰래 준비하기도 힘들다. 돈 관리를 아내가 하기 때문에 뭔가를 사면 금방 들켜버린다. 차라리 눈치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너무나 빠르다. 적당히 모른 척 넘어가지도 않는다.


결혼할 때 프러포즈 이벤트가 생각난다. 아내는 어설프고 손이 오그라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아내는 어설프게 애매하게 하지 말고 그냥 정말 비싸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사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시키는 대로 좋은 레스토랑에서 한 끼 하는 것으로 프러포즈를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엄청 고민을 했다.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일단 평소에 동네에서 눈여겨 뒀던 곳에서 밥을 한 끼 먹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뭐 없을까??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아내의 생일날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 생일 축하 노래라도 기깔나게 신명 나게 불러 재꼈으면 그렇게 욕먹지 않았을 것이다. 


손 편지를 쓰기로 했다. 어떤 내용으로 쓸 것인지는 틈틈이 생각을 해두었다. 그러나 손에 힘이 좀 없어서 글씨를 틀릴 수도 있으니 연필로 쓰기로 했다. 예쁜 편지지를 사면 들킬 테니 집에 있는 예쁜 색지를 이용하기로 했지만…… 줄이 없으니 글씨가 위로 올라가거나 내려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노트한 장을 이쁘게 잘라서 쓰기로 했다. 들키지 않게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참…… 이게 뭐라고 갑자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간다. 참 고생 많이 했다……


그날이 되었다. 입고 나갈 옷에 편지를 미리 넣어 두었다. 아내와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내가 상상했던 결혼 10주년의 모습은 적어도 나의 자동차로 아내를 태우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모습이었는데 참 상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란…… 이게 인생이지.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예약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때다 싶어 주머니에서 손편지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밀었다. 아내는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 못했다면서 미안해했다. 그 자리에서 펼쳐서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의 성격답게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읽어 내려간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이 꽤나 읽을만한가 보다. 그러면서 고맙고 잘 썼다며 엄지 척을 날려 준다. 


눈물 쏙 빼는 이벤트는 아니지만 그날따라 음식도 참 맛있었고 지나간 아내의 생일날의 마음의 앙금을 조금은 덜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편지라도 쓰기 참 잘했다. 내년에 다가올 아내의 생일에는 정말 기깔나게 생일 노래를 불러줘야겠다. 춤이라도 춰야 하나…… 고민은 계속된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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