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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13. 2021

스치고 지나가는 '인세'의 실체

내 인세를 무시하지 말지어다.

출판사에서 인세를 정산한 메일을 도착했다. 작년에 냈던 책 인세가 통장에 슬쩍 묻어났더니, 이번 달에도 통장에 출판사 이름으로 입금내역이 남았다. 석 달 전 출간한 책의 결과물이었다. 땅 파면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결과가 미미하긴 해도, 소소하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긍정적이기만 하다. 적은 비용이라도 나의 출간 도전 결과가 상승곡선을 타고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인세를 조심스레 밝히자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축하해, 치킨' 정도였다. 3.3% 세금을 뺀 금액에서 유추하더라도 몇백 권은 팔린 것인데 시큰둥한 반응이 더 놀라웠다.


작년에 받은 첫 인세로 아이들 용돈을 쥐꼬리만치 줬었다. 3개월에 한 번 씩 들어오면 배민에 전화를 몇 번 넣었다. 딱 그 정도였다. 그게 실망스러웠던지 이후 인세라면 뜨드미지근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인세의 양상이 달라졌다. 놀라운 숫자가 아니기에 가족들의 우스운 반응은 변함이 없다.

출처:픽사베이

대표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아주 미미한 것에도 대표님은 기뻐하셨다. 조금 더 홍보를 해야겠다거나 2쇄를 찍을 것에 미리 기뻐하는 나에게 응원하는 말을 남기셨다. "처음부터 큰 건 없어요. 작은 걸 크게 만들어가요. 잘하고 계시니가 빛을 볼 날이 올 거예요." 나는 그 대목에서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라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처음부터 타고난 작가가 몇 있을 것이고 서서히 성장하는 작가가 많을 것이며 얼마는 한 권에서 끝날 수 있다면 나는 중간쯤 어떤 작가이길 바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출간할지 모르지만 지금 추세로는 계약만 계속 성사된다면 다음 책이 이전보다 더 나은 작가가 되지 않을까. 나의 생각이 여기쯤 이르자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다른 책의 인세가 통장에 꽂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본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세상에 돈을 도외시할 수 없다. 돈은 편리함을 구축할 수 있는 도구면서 나의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과 지지라고 할 수 있다. 매달 인세가 따박따박 적게라도 꽂히면 다음 책을 쓸 이유에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다. 인세가 꽂힌다는 것은, 독자가 내 책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그래서 미미한 인세가 들어올 지라도 계속 쓰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된다.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말문을 닫으면 안 되는 것일 테니.

출처: 픽사베이

인세가 많지 않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린 가족들의 시큰둥한 반응이 뭐 그리 중요할까. 오히려 반전을 그려보는 재미가 있다. 어느 날 가족들의 태도가 적잖이 달라질게 분명하니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가님은 어서 집필을 하시지요. 우리들은 집안일에 전념할 터이니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라고. 그때 한 번은 떵떵거려야겠다. "내 인세를 무시했던 분들은 들으시게나, 적다고 인세를 무시한 죄, 용돈 삭제로 그 벌을 대신한다"라고.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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