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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04. 2022

9시, 신데렐라가 떠날 시간.

나를 요구하는 수많은 부름에 쪼개고 쪼개서 사는 법

6시면 마감을 하고 정리한 뒤 5분 안에 튀어나온다. 오늘은 진로상담이 있어, 중3 남학생을 잡아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니나 다를까, 알람처럼 막내가 전화를 했다. "엄마, 언제 와? 배고파" 분명, 프라이팬에는 식었겠지만 돼지고기 조림이 있고, 어묵탕을 시원하게 끓여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스스로 계란 프라이도 할 줄 알고 급하면 만두도 쪄서 먹고 냉동 프렌치프라이도 구워 억을수있다. 라면류는 종류대로 조리 가능한 막둥이가 가끔 엄마를 찾을 때는 다른 일은 제쳐두고 가야 한다는 신호다. 아이가 부르지 않았다면 당장 장소를 이동해서 3시간 정도 시간이 생겨 족히 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1시간가량을 접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나는 운전대를 집으로 향했다. "아그들아, 기다려라. 엄마가 간다.

급하게 끓였지만, 배가 부른 첫째의 침샘마저 폭발하게 만든 급조 요리는 일명 스피트 떡만둣국. 멸치육수를 먼저 끓이고 재료를 넣어야 하지만 떡과 만두를 급하게 넣고 마지막에 멸치를 넣어 우렸다. 순서가 내 마음대로지만 맛만 좋으면 된다고 믿는 식이다. 이 와중에 스피드로 살아가는 신데렐라 작가라면 (최근 알게 된) 동전 형태의 육수를 상비약처럼 쟁여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곁에 어슬렁거리며 배를 땅땅 두들기는 아이의 얼굴을 관통해 오늘 만들어야 할 강의용 PPT 슬라이드가 보였다. '얼른 다녀와야 하는데......'


"엄마, 얼마 전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싫었는데 이제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은데?"

사춘기 아이에게 이 말을 들으니 낯설기도 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릴 뻔했다. 여간해서 들을 수 없는 말 아닌가. 아이 말에 혹해서 뻔히 실패할 게 뻔하지만 커피 한잔 내리고 거실에서 작업을 해야겠다는 유혹이 잦아왔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검은 놈의 생각을 뿌리쳤다. 뻔한 결과를 며칠 계속 겪었기 때문이다. 즉시 나가도 9시 마감 전에 나오려면 2시간이 채 모자란 시간만 남는다.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 분명 집안이 덥기만 하지는 않았다. 결정해야 했다. 2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 왕자님과 댄스를 하기에는 충분하겠지만, 강의 준비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황급히 다녀오겠노라 인사를 하고 근방을 돌았다. 가는날이 장날인지 매일 가는 카페는 문을 닫았고 근처 새로 생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더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익숙한 루틴을 다.

루틴을  깨자 새로운 아지트(벌써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커피 내리는 소리, 믹서 가는 소리가 천둥보다 큰데도 백색소음 정도로 들리니, '금사빠'는 아닌데)가 친근해보였다. 빅사이즈 아메리카노를 테잌아웃이나 매장 음용 동일하게 2000원이라서 그런 건 아닐것이다. 글이 절로 쓰일 실내장식에 커피 가격까지 착할 수가. 일순간 카페 내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커피를 하루 몇 잔을 몇 년을 팔아야 인테리어 비용을 뽑을지가 먼저 떠올랐다. 신데렐라가 춤추는데 집중하지 않고 호박마차 걱정에 왕실 궁전의 전기세를 걱정해서야 쓸까. 남은 시간이 얼마 있지 않으니 어서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 소위 N 잡러라면 알뜰한 시간 활용은 기본 체력이지 않을까. 호박마차 걱정은 요정 할머니에게 맡기고, 궁정 살림은 왕자님께 양도하기로 한다. 나는 9시 종이 울리기 전 뛰쳐나가야 할 신데렐라이니까. 그것도 글 쓰는 신데렐라. 강의하는 신데렐라. 교육 사업하는 신데렐라니까. 어서, 어서. 9시가 곧 된단 말이지. 지금 시계를 보니, 비운이 닥쳤다. 남은 시간 40분. 브런치 글을 왜 쓰기 시작했던가. 병이 아닐 수 없다. 브런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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