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멈추거나 물러서지 않는 직진인생을 원한다. 그렇게 달려 빠른 속도로 남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길 바란다. 한치의 실수를 허용하고 싶지 않고, 실패로 지리멸렬한 감정에 담금질되길 바라잖는다.
살아온 일들을 되짚어본다. 엉거주춤한 상황마다 당황스러웠고 좌절할 때마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조금 나아갔다. 나아졌다고 확언할 수 없지만 옴짝달싹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이유, 해내는 열정이 일어났다. 결국 누군가 그려놓은 길을 가기보다, 내가 깨달아 새로운 국면을 향할 때 조금 나아진다. 실패를 마주하고 살살 달래는 것이 실패를 덮어놓고 '노력'을 강요할 때보다 수월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 실패의 가치가 도드라진다. 선생이랍시고 다량의 지식과 스킬을 부어주어도 아이들은 제자리일 때가 많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거나 "왜?"라는 아이의 질문을 받아 상호작용을 할 때, "아!~선생님 알 것 같아요"라는 작은 탄성이 나오면 그때, 개운해진다. 결국 아이가 찾아가는 것이다. 최소한의 개입! 부어주는 동기부여가 아니라, 아이가 동기를 찾을 수 있게 거치적거리는 돌쩌귀들을 조금 옮겨준다. 그리고 아이가 눈을 들어 조금 더 넓은 이유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인도할 때,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스스로 발견하고 나아가는 아이가 더 오래 달릴 수 있음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 스스로 실패하고 멈추고 왜 그런지 오래 고뇌하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볼 여유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어른의 일임을 이렇게 배워왔다.
내 인생이 올곧게 직진하길 바라지만, 때론 멈춤, 뒤로 한보 주춤거리기, 혹은 다른 길 살피기를 할 때가 더 많다. 실패를 끌어안고 사랑하는 것이 나 스스로를 어른스럽게 대하는 방식이다.
죽을 때까지 배우며 살아간다면, 속도와 성과물의 압박에서 벗어나 실패와 친해지도록 자신을 허락할 수 있어야겠다. 이것이 진정 노련함이겠지. 실패가 찾아오는 것이 기회다. 멈출 수 있는 것은 용기다. 다른 방법을 찾고 실행함은 믿음이다. 직진도 감사, 멈춤도 감사, 돌아봄도 감사. 허락하는 용기로 오늘 하루 고요하고 대차게 숨 쉬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