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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6. 2022

그녀의 건축학개론

집짓기와 글짓기

건식 화장실로 분리해 오픈 세면대에 변기 쪽과 샤워실을 분리한 아이디어는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편리했다. 곳곳에 크기가 다른 창으로 보이는 뷰와 2층 박공지붕으로 천고를 높여 개방감을 느낌과 동시에 와이드로 연결된 4미터가 넘는 꺾이는 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멀리 연잎이 가득한 호수나 더 멀리 부드럽게 지나가는 기차와 같은 뷰는 무겁던 마음을 가볍게 하고 들뜬 새 기분을 금세 안겨주었다. 그녀는 결국 아름다운 풍광까지 안은 '내 집'을 완공한 것이다.

처음 허허벌판의 땅을 함께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들어설 건축물을 상상할 수 없었다. 평소 인테리어 센스가 남다르고, 뭐든 제 손으로 뚝딱거려 만들거나 고치는 그녀였다. 방문한 기사님보다 더 조립에 능한 만능녀. 그녀가 지은 집은 어떤 모습일까? 땅을 사는 데부터 난관에 부딪쳐 수없이 많은 고비를 넘긴 그녀의 극복 레벨은 일반인 이상일 것이다. 모진 어려움에 세금을 더 내거나, 갚을 더 많이 쳐서 길을 내기 위한 땅을 매입하는 등의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툭툭 옆구리를 치듯 잽을 날렸지만, 그녀는 결국 넘어섰다.


부지를 매입하고 건축을 하기 위한 설계를 조율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별스런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면 설계대로 시공을 하면 그만이지만, 대체로 집을 지으려는 사람 치고 감각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기만의 추구하는 그림이 있기 때문에 서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원하는 그림에 가깝게 지으려면 설계업체 측과 무수한 조정을 해야 한다. 조율이 되지 않으면 짓기도 전에 삐그덕거림으로 서로 지칠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런 어퍼컷을 여러 대 맞고도 녹다운되지 않았다. 어찌어찌하여(그 과정이 길기도 하지만, 사실 다 이해하지도 못해 여기서 갈음하는 게 낫겠다) 원하는 건물의 프레임을 잘 짠 후 삽을 뜨기 시작한 그녀는 또 다른 레프트 훅이 날아오는 과정을 견뎌냈다.

시공사는 최대한 시공에 유리한 대로 하길 바란다. 건축주의 디테일한 요구가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은 줄 지언정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품이 많이 든다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요구에 다 응해주지 않는다. 요구에 순순히 응하려면 웃돈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멀리 두고 볼 때, 생활해야 하는 건축주라면 나중에 '하길 잘했다'라고 할 만큼 아름답거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요소라면 손이 더 가도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 시공하는 측에서 봤을 때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으니 건축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일손이 더 불러야 하니 웃돈은 마땅한 결과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원대로 다 맞추지 못했지만 웃돈을 주고서라도 조목조목 그리던  그림에 얼추 당도했다. 만약 시공사에 맡기기만 했다면 얻지 못할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맞은 라이트 훅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 시공 말미에 각 종 주문형 가구로 주방을 꾸미는데서 발생했다. 기사 몇이 출장을 와 며칠을 씨름하며 조립하는데도 잘 맞아 들어가지 않다는 소식에 주방공사가 지연된다는 사실에 나마저 한숨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장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린 그녀의 시간의 조각은 혼자 누릴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런 각종 역경을 만난다고 그칠 일이었다면 그녀는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까? 대견하기도 하지만, 몰라서 시작한 일이니 마칠 때까지 견디고 견딘 그 마음에 축하와 칭찬을 몇 곱절 쏟아부어주고 싶다.


내 집을 짓고 싶다는 꿈을 실현한 이들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던 '고난의 행군 스토리'를 익히 알면서 그녀의 결심과 진행을 지지하고 겪려 했던 게 내내 목에 걸린 가시 같았는데 완공된 집을 눈으로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인생에 잘한 일중 몇 번째로 이번 건축을 손꼽을 것을. 나라면 결코 상상하지 못할 일을 당당히 밀어붙인 그녀는 여리여리함에 강인함이라는 도장을 하나 더 찍야 말았다. 해사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서 고난의 산을 몇 개나 넘어도 결국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고지에 이른다는 확신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완공까지 1여 년의 시간이  순삭이었지만, 생애 가장 길고 질기며 거친 시간이었을 테니 앞으로 새 집의 다채로움을 오래 누리길 바라며 축복의 기도를 했다.

대화를 하는 틈을 비집고 시선을 빼앗는 기차가 길게 뻗은 창을 가르며 달려갔다. 기차는 시야를 넘어 사라졌지만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가고야 만다. 기적은 대단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느려도 끝까지 밀고 가는 평범한 사람의 몫임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하루였다. 나도 집을 지어볼까? 자재를 쌓아 올리는 집을 지을 깜냥은 안되니, 생각의 집인 글을 짓는 일 정도로 멈춰 생각해본다. 생업의 일에 분투하느라 최근 쓰는데 몰두하지 못했는데, 다시 글을 지어 올리려면 현실이라는 쨉이 무수히 날아올 것이다. 일과 가정이라는 날개에 글 건축이라는 날개까지 균형을 맞추기에 솔솔찮게 허덕거릴 테지. 쓰는 삶을 살겠다는 목표가 짜부라지지 않게 소소한 잽을 무수히 날려 적을 물리쳐야겠다. 쌓고 쌓다 보면 어딘가 도착하겠지. 나의 미지의 목적지,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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