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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2. 2022

남자아이 그림의 특징과 매력

心心한 페어런팅 #4

"졸라맨으로 그리지 마"

"총, 칼 금지, 전쟁이나 싸움 그리기 금지"

"인물에 눈, 코, 입을 꼭 그리기"


남자아이의 특징을 잘 모를 때 수업 중에 하던 말이다. 그들은 스케치북을 뚫을 기세로 화살이나 총알을 그리는데 몰두한다. 나의 지시를 무시하나 싶어 혼내려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다른 의도 없이 집중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얀 바탕의 종이를 관통해 상상의 세계에서 대 격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를 쓰거나 독서 후 활동을 하거나 글쓰기 전 단계로 그림을 표현할 때 남학생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그리기 싫어요"라고 말한다.

-만약 그린다면 성의라고는 없는 졸라맨 일색이다

-아무렇게나 그은 줄이 가득하다

-인물이 나오면 대개 싸움의 현장을 담는다

-공룡, 곤충 등 세밀화를 그리거나 중장비 차량 포함한 이동수단을 그린다

-비례와 색감과 원근법에는 관심이 적다, 오로지 상상하는 세계를 이미지로 옮기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남자아이들 미술표현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험의 누적에서 일개 사소한 공통점을 찾아냈고, 얼추 남학생들에게 잘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그리기를 여아들보다 싫어하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여선생님이 포진한 공교육과 사교육계에 자신의 그림으로 칭찬을 받은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테일한 세부 묘사나 인물을 돋보이게 그리거나 풍경을 담는 여아들에 비해 우스꽝스럽거나 성의가 없는 그림 투성이다. 그러니 또래 중에서 그림으로 돋보이기 어렵다. 심지어 부모나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면 그림에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놀림이란 진한 농으로부터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네'라는 말이나 심드렁하게 '노력했네, 잘했어'와 같은 기운 빠진 피드백을 들으면서 그림에서 점점 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칭찬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라도 그림으로 자신의 상상을 표현할 때 몰입하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부모가 허락하기만 하면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마음껏 끼적거려도 된다. 그림에 정답이 없다. 어른의 취향에 맞춰주려 애쓰지 마라"라는 진정성만 전해지면 남자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진짜 그래도 돼요?" 어쩔 때는 이런 남자아이들의 반응이 안쓰럽기도 하다. 교육환경에서 용인되지 않는 기준에 묶인 답답함을 느끼기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은 목표를 주면 선의의 경쟁 앞에강철판도 뚫을 듯한 몰입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내용이라도 갈등이나 대결구도로 포커스를 맞춰 그림으로 나타내는 적용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전문적인 식견을 빌려보자면, 남자아이들에게 힘의 세계에서 우위에 서서 자신의 입지를 공교히 하려는 갈망이 기본 장착되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의 그림은 여자 어른의 눈에는 "폭력성을 내포한 위험한 인성의 표출"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한다.  "얘야, 넌 만날 싸우는 것만 그리냐?" '총, 화살, 칼만 그리니 니 속에 뭐가 들었을까, 너무 잔인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아닐까? 그냥 둔다면 폭력성이 커지는 거 아냐?'와 같은 생각으로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남아들은 오히려 반대다. 싸우고 싶고, 쌓인 분노가 많아서 앞에서 말한 류의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힘을 소유하고 부리고 싶은 본성을 표현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행위를 담는 것이다. 부정적 시선으로 행동을 금지하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해야 한다. 이상한 그림 때문에 삐뚤어진다고 화들짝 놀래기 전에, 교훈적 시선을 잠시 내려두고 관심을 보야한다.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가도 드러내면 비난받는다면 누가 그림 그리기를 즐겨할까. 나처럼 그들의 작업물에 흥미를 느끼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여지껏 남아들 그림이 오해와 지적질이 옅어지길 바란다.


어느새 나는 남학생들 그림오해하지 않고 감상하는 눈이 생긴 것일까? 진솔하게 그림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장벽을 부수고 더 버라이어티 한 전쟁 신을 그려오는 것 아닌가.

"주인공이 택시를 대신 운전하다가 이상한 곳에 갔거든요. 거기서 이 놈을 만난 거예요. 아주 악한 빌런이에요. 그래서 숨겨놓은 광선 검을 꺼내 넥 슬라이스를 한 거죠"

"얼마나 악한 빌런이길래, 원래 이야기에 없는 장면인데도 상상을 잘하는구나. 그런데 주인공 모자에 뭘 그린 거야? 주인공 표정을 보니 분노가 가득한데, 맞니?"

아이는 자신의 그림을 진심으로 질문해주는 나에게 영혼까지 바칠 양으로 디테일한 설명이 늘어다.


최근 남자아이들 그림 감상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 그들의 그림 중, 형태를 알 수 없는 작은 도형이나 선의 정체를 묻는 게 그것이다. 남자아이들은 점 하나를 찍어도 어떤 스토리를 염두에 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처음에는 남자아이들 모두 나에게 거짓으로 말하는 줄 알았었다. 줄이 도로였고(도로에는 여아들에게 흔한 꽃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동그라미는 주인공이 밟은 바나나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말이다. 나의 궁금증은 매일 더 커져 상호작용 하다 보면 책 내용에서 아이가 구축한 세계관 속으로 쏘옥 빨려 들어간다. 아이의 세계를 관심으로 귀 기울이면 놀랄만치 다채로움이 숨어있다. 비록 하트 모양이나 꽃이며 별이며 꾸밈의 용도로 그려지지 않은 다소 어지럽고 알아보기 어려운 흑백의 그림에 말이다.


미술 전문가도 아니고, 남아 미술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이야기를 읽고 만들어내는 남자아이들의 그림은 새로운 창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도 이야기를 꼼꼼히 읽고, 제 멋대로 신나게 그리고 받는 칭찬의 단 맛을 본 탓에 더 책을 잘 읽으려 한다. 감상하는 나도 즐겁고, 마음껏 그린 후 보여주고 싶어 안달 난 아이도 즐거우니 이런 일거양득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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