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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29. 2022

아빠의 딸기 팩

心心한 페어런팅 #10

작은 아이가 얼굴에 트러블을 고민하던 중 진정효과와 영양공급을 위한 팩을 구입했다. 당당히 자기 용돈으로 구입하니 반대할 입장도 안 될뿐더러 팩을 바르는 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하나의 목표를 세우면 세수하는 시간도 아깝고 먹는 일도 귀찮고 오로지 목표에 몰입하는 형이라 이날까지 팩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딸 덕에 딸기향이 물씬 나는 팩을 얼굴에 바르고 10여분의 휴식을 추하면 달콤 상큼의 극락을 경험하듯 미소를 띨 수밖에 없다. 부모를 멀리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종알대고 얼굴을 책임져주니 성은이 망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매사 날카롭다가도 팩 서비스를 해줄 때면 지극정성 꼼꼼히 발라주는 은덕은 중독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__야, 그 팩 아직도 있니? 아빠가 사줄까?"

20년 차가 넘는 동안 남편이 곰인 줄 알았는데, 딸을 대하는 모습은 여우에 가깝다. 목소리도 간드러지고 명령형을 찾을 수 없는 청유형 일색이다.  비음까지 녹아난 말랑한 대화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아직, 두 달은 더 쓸게 있어. 사기는 왜 더 사.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아이 손에 딸기팩이 있다. 여아들에게 아빠란 다른 성별을 가진 부담스럽고 귀찮고 소통도 잘 안 되는 존재일 텐데, 딸의 팩 관심사가 돌연 아빠와 라포 형성에 초석을 놓았다. 


부녀지간의 관계가 급속히 호전되고 발전한 시점이 바로 딸기팩 공유 사건부터 아닐까. 두 사람의 작당모의는 팩에 그치지 않았다. 딸아이가 마스크 팩도 구입한 터라, 미용에 관심 없는 아내 덕에 마스크 팩이 뭔지도 모르는 아빠에게 딸이 먼저 손을 먼저 내밀었다. 자신이 구입한 마스크팩의 효능을 설명하면서 하나 시범 삼아 체험시켜 주었다. 엄마가 요구할 때 머뭇거리던 모습과는 달랐다. "한 팀"이라는 느낌. 그게 짐짓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왕따 시키고 아빠와 밀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남편은 가장 바쁜 날이 일요일이다. 종일 맡은 일이 가장 많아 얼굴 볼 새가 없지만, 굳이 바쁜 아침시간에 침대에 누워 딸을 부른다. 빨리 나가지 않냐고 면박을 주는 내 뒤에 딸이 마스크팩을 들고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모종의 연대의식, 공감대라고 말할 그 무엇이 매우 탄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 딸에게 아빠란 '징그러운 남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인식되는 게 사실이다. 실로 얼마 전까지 작은 아이도 불쾌와 거북함을 표현했었다. 그런데 팩으로 묶인 일종의 하나 됨은 견고하기 그지없다. 


존재에 대한 관심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대화를 하루에 1분도 채 하지 않는다는 게 대한민국 가정의 대화 현실이다. 가족이고 익숙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대화가 끊어진다. 과거의 세대차는 30년을 두고 느끼거나 강산이 한 번 바뀌는 10년 주기라면 지금은 6개월도 길어 3개월이라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기성세대의 말투와 문화와 사고방식은 조선시대 사람을 마주하는 것 이상으로 생경할 것이다. 어쩌면 "꼰대" 라거나 "라테"세대라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울 정도다. 아예 지구별과 외계별에 사는 사람들의 만남 같을 정도로 딴 세상 사람들의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되기 쉽다. 그런데 자녀의 관심사에 진심 어린 호응과 응원, 진정성 있는 질문과 물질 지원 등은 차갑게 식은 관계도 가깝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해보고 싶다. 부모라면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의 공부에 대한 질문 외에 무슨 말를 주고받고 있는지를. 과연 부모인 우리가 자녀의 생각과 감정과 고민을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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