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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06. 2022

내게 의자 같은 사람

<의자>이정록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일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때론 높은 파고에 기함하고 잔잔한 높이라도 밀고 들어왔다 밀려간다. 파도가 쉼 없이 모래사장에 들이닥치듯 일상에 잔잔하거나 기함할 일은 쉬지 않고 찾아온다. 공방을 오픈하고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터널의 3/4가 코로나였으니 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놀라움과 감사로 고개를 조아리게 된다. 감기라는 이름을 파헤쳐 어떤 바이러스의 작용을 논하지 않듯, 코로나도 매 한가로 여기며 호들갑을 떨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 모두 안전에 가까워졌다기보다 누구나 대처법을 익혀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 선 나로서는 이 분위기가 다행이지만 더 좋다고 할 수 없다. 오프라인 중심의 교육서비스가 무한한 가상세계까지 열려 전 세계로 연결되는데 거리낌이 없어졌다. 어떤 이는 오프라인을 접고 온라인에 집중하며 다른 확장을 꾀하기도 하는 이 시절에 나는 반대를 선택했다. 


처음 오픈할 때 얻은 대출을 다 갚을 무렵인데 다시 두배 이상의 대출을 내서 확장을 꾀하다니. 오로지 쾌적하고 너른 공간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열망 하나로 눈이 멀었다. 즐겁게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무엇보다 심리적 작용으로 방해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독서와 글쓰기라는 행위에 거치적 거리는 것을 거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의 바람이 현실화될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미 계약을 해버렸고 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3배 큰 공간을 선택한 결과 세배의 공사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4년 동안 아무리 구해도 나타나지 않던 너른 공간 하나가 겨우 생겨,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에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찮았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한 사람이 있는데, 남편은 확장을 반대하지 않았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바쁜 일정을 쪼개서 현장을 들여다 보고 감리 역할을 했다. 조명과 바닥은 우리 손으로 하기로 해서 일하는 중에 들여다보기 어려운 나 대신 남편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드나들었다. 그뿐 아니다 가구를 짜 넣을 때 비용이 치솟기 때문에 중고가구를 구하기로 했다. 중고는 비용은 저렴하지만 이동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결국 용달을 빌려야 하고 시간 약속을 맞춰야 하기에 공사일정에 걸맞은 매물을 찾기가 어렵다. 겨우겨우 그 일을 해내고 남편이 발 역할을 해주었다. 심신이 지쳐 집에 돌아온 그에게 간판 시안 최종을 고민하던 나는 별생각 없이 밀어내는 투의 말을 해버렸다. 


"나 지금 시안 수정하는 문구를 정해야 하니 뭐 시키지 말고 자기 할 일 해"

지금까지 자기 일을 미루고 내 일을 하고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들어온 그를 두 번 죽이는 말을 한 것이다. 냉전으로 시간을 보낸 다음날 남편에게 위의 시를 보냈다. 그리고 내게 의자 같은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게 의지할 존재로 버텨준 공에 감사를 전했다. 다급하고 힘드니 누구라도 의지하고 싶을 때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이웃인 남편에게 많이 의지했다. 현장 공사 진행을 생각하지도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던 것도 남편이 알아서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은 내가 벌이고 메꾸는 사람이 존재해서 공사일정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이 시를 읽고 겨우 깨달았다. 


미물인 호박에 똬리를 놓아주는 일, 참외 아래 지푸라기를 깔아주는 일이 귀한 것은 마음 때문이다. 똬리와 지푸라기처럼 나를 든든히 받치는 공은 이번 공사일 만은 아니겠다. 일상에 대부분 당연하게 채워주는 누군가로 지탱해가는 게 우리의 삶이다. 의자가 있어 편리한 줄 모르지만 있던 그것이 삐그덕 거리거나 없어지면 '의자'를 의식하게 된다. 의자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던 남편 얼굴이 많이 늙어 보였다. 알레르기로 한쪽 눈두덩이가 부풀어있음을 며칠 지나서 알게 되었다. 안색이 나쁘고 주름이 꽤 늘었다. 덜컥 '내가 앉은 의자가 낡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것은 대포소리처럼 티를 내고, 남이 나를 지탱하려 애씀은 모기 날갯짓 소리처럼 여기는 종지 그릇보다 작은 마음이 오늘따라 흉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의 똬리가 되고 지푸라기가 되기보다, 내가 힘드니 나의 의자가 되는 게 당연하다 요구하는 마음. 낯익은 관계, 가깝고 편한 관계에 더 감사하며 귀하게 여기지 않다가 상하게 만드는 일을 내가 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모자를 쓰고 나가 도착한 짐을 옮겨주는 나의 의자. 얼큰한 김칫국을 끓인다. 남편 얼굴에 마스크팩이라도 올려줘야겠다. 내가 낡아가는 줄 몰랐는데, 남편 얼굴을 보고 알았다. 서로 의자가 되어 낡아가고 있음을.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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