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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05. 2019

명절, 이래도 되나요?

18년 만에 시댁 음식문화 변혁

30분 후에 시댁으로 출발합니다. 급하게 써내려 갈꺼예요. 오늘은 설날이고 저는 두째 며느리거든요. 늦으면 안되니까요.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 드릴께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서요.


우리 시댁은 다른 집안과 조금 다른 가풍이 있다고 했죠? 일단 어머니가 적극적이시며 장봐두기를 좋아하신다구요. 그것도   전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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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가풍이 여럿 있어요. 전을 많이 굽지만 전만 구우면 옹기종기 삼형제네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찾아 오는 손님도 없고 인사드리러 갈 큰집도 없답니다. 놀랍게도 시아버님이 4대 독자시거든요. 그래서 설 전날, 전을 구으면 그게 설 준비 끝이랍니다. 그리고 마당에서 작은 불판에 웅크려 앉아 고기를 구워먹어요. 거의 3인분을 구울 수 있는 작은 불판이라고 해두죠. 큰아주버님이 실수로 가져다 둔 것에 한 번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했다가 5년이상 전통으로 자리잡은 문화입니다. 이렇게 전통, 문화, 가풍은 뜬금 없이 의도 없이도 시작되기도 합니다.


 다른 가풍을 말해보자면요, 설 당일 오전에 형제들이 다 모입니다. (말했죠? 집안에 일박문화는 없다는것. 3형제 모두 가까이 살아요. 그중에 우리집이 제일 가깝다는 사실. 그래서 모두 해산했다가 설 당일 아침에 모여요) 그러면 함께 어제 부친 전과 어머니가 무친 오색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어요. 그리고 낮에는 라면과 수육등을 간단히 먹죠. 그러니 사실 시댁행을 힘들어하는 여타 며늘네들 보다는 수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어제, 5분거리 시댁행 출발하고 바로 도착했더니, 큰아주버님네가 도착해서 대게를 찌고 계셨어요. 그리고 주방에서 벌써 전이 다 구워지고 있었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바로 돔베기(상어고기)를 굽는 것인데, 특유의 돔베기 냄새가 가득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리며 일거리를 찾았지만, 적극적이시다 못해 여장부 같으신 어머니가 벌써 오전에 다 구워두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구은 전을 담는 대바구니가 달랑 하나!! 이게 뭡니까? 세상에 몇 바구니 나와야 하는 전의 종류가 달랑 한 바구니였어요. 레알? 이런 말이 튀어나오더라구요.


 영문도 모르고 삼형제와 시부모님 아이들이 마당에 모여앉아 김이 펄펄 나는 대게 살을 발라먹었어요. 그리고 손을 씻고 들어왔더니 앉아서 과일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는 거였죠. 저는 좌불안석 서서 무얼할까 찾고 있었더랬죠. 어머니가, "야야 할꺼 없다. 이번에 게랑 소고기랑 고기굽고 다른거 하지말자고 하도하도 캐싸서 많이 안하기로 했다"

"네?" 놀랐지만 속마음은 달랐어요

'유후~~~'

형님들이 웃고 계셨어요.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일한 패턴의 변화에 당혹스러웠지만 싫지 않더라구요.


얼떨떨한 마음에 어슬렁거리다가 마당에 군불을 때서 라면을 참으로 끓여 먹고 고기파뤼 순서였어요. 최고급 한우를 먹어보겠다는 모두의 소망을 다 충족시킬 양은 아니었지만, 미세한 최고급 소코기를 숯불에 구워먹고 다음은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지요. 대노하실 아버님도 간이 안좋으셔서 별 말씀이 없으셨고, 어머니도 많이 부산하지 않으셨어요. 정말 처음으로 온가족이 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며 막내(두째형님네 늦둥이)의 재롱을 감상하며 밤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답니다.


설명절, 이런 날이 단한반도 꿈꾸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어머님의 뜻은 굳건했고 아무리 음식을 줄이고 다른 방식으로 하자고 의논을 했어도, 도착하면 항상 수북한 재료들에 입이 떡 벌어지곤 했어요. 평생 대가족을 먹이며 입히시느라 잔뼈가 굵으신 어머님의 스케일을 줄이시기 얼마나 어려우셨으며, 유명한 시장에 뭐가 좋다더라는 동네 분들의 소문에도 발을 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모두가 노동이 줄고 모두가 대화가 더 많아지고, 모두가 마주앉아 서로를 자세히 쳐다보고, 자꾸보니 더 귀하다고 할 수 있는 설명절을 경험하게 되어 황홀했네요.



어쩌면10여년 후에, 우리 가족 모두 휴양지 놀러가서 거기에서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변혁이란, 이처럼 난데없이 찾아 오기도 하나봅니다. 그리고 어디로 변해갈지 모르는 거겠죠. 생각지도 못한 좋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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