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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04. 2019

허락받은 나쁜 며느리입니다1

어머니를 존중하는 방법



큰아이가 물었다. “요즘 할머니 집에서 먹는 부침개가 맛이 없어. 왜 그래?” 나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일 부침개를 구우면 몸에 기름 냄새가 밴다. 그리고 이미 후각은 마비되고 일산화탄소 과다섭취로 식욕을 잃는다. 구울 때 몇 개 집어먹는 것 말고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만들면서도 먹지 않아서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중 남편이 명쾌하게 답했다.


할머니가 늙으시니 간을 잘 못 보신다. 미리 준비한 재료가 짜거나 싱거워서 그럴 거야.”      

나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아들이 하는 말이니 누가 말릴 수 없다. 어머니의 기특한 막내아들의 고귀한 말씀 아닌가. 나는 그 대답에 동의했다. 나이가 들면 혀의 기능이 떨어져 맛을 잘 못 본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아이들이 엄마 할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였다.  

   

시댁에는 며느리가 큰소리치지 못할 가풍이 있다. 명절을 맞을 때마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장보고 준비해두신다. 며느리 세 명 모두 일을 하느라 살뜰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러 다니지 못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설 명절이 다가오기 두 달 전부터 유명한 시장을 찾아다니시며 좋은 물건을 찾아오는 것으로 명절을 준비하신다.


며느리 셋이 일을 하니, 어머니의 일정에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세 명의 며느리가 무관심해서 어머니가 고생하신다는 말을 들을까 걱정은 되지만, 어머니가 워낙 빠르고 주도적이시라 혼자 하시는 것을 더 즐기신다. 가끔 5분 거리 시댁을 들러보면 어머니의 주도면밀한 준비에 놀라고 스마트폰도 사용 못 하시는 어르신의 정보력에 놀란다. 어디서 듣고 어떻게 다녀오시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저 어머니 앞에서는 애기가 되어버리는 며느리다.  

   

어머니는 한두 달의 준비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맞춤으로 준비해두신다. 그러면 우리는 어머니의 준비하신 대단한 양의 재료를 굽는 것으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다. 분명히 18년이 넘도록 음식을 줄이자고 말하는데 매년 마다 부침개 바구니는 가득 차기만 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준 대답에 조금 불편해진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이제 어머니가 곳간 열쇠를 넘겨주셔야 해요. 며느리 세 명이 할 수 있어요. 부침개도 줄이고 메인요리로 몇 개 준비해서 맛나게 먹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들으라고 조금 더 크게 말했다. 할머니 혼자 고생하시게 두는 며느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동의할 줄 알았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의 말에 남편이 동의할까 했더니 반대였다.    

 

무슨 소리 해. 엄마의 기쁨인데 빼앗으면 안 되지. 그냥 하시라고 둬. 맛없어도 우리가 먹으면 되잖아.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을 왜 말려? 괜찮으니까 신경 끄고 명절에 가서 전만 구우면 돼. 엄마가 하고 싶다면 혼자 다 하셔도 괜찮아.”     

여보, 무슨 소리. 어머니도 연세가 있는데 힘이 달리실 거야. 우리가 해야지. 이번에 당신이 강력하게 말씀드려보면 어때?”     

절대 반대야! 그냥 엄마 하자는 대로 해. 힘들면 안 한다고 말씀하실 거야

며느리들한테 말씀 안 하시고 혼자 끙끙거리시는 분인 거 알잖아.”     

아니다. 평소처럼 하고 싶다고 나더러 이미 말씀했어. 그냥 진행해. 아직 힘이 넘치신다. 하고 싶은 어른을 왜 말리려고 하냐?”     


나는 불량 며느리, 나쁜 며느리로 계속 머물게 생겼다. 사실 착한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가 될 목표도 없다. 남과 남으로 만나 자식과 부모 사이처럼 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최소 부모님의 고생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 미안한데, 남편이 정리해 줘서 마음이 시원해졌다.


아이들도 두 귀로 남편의 허락을 들었다. 증인 두 명이니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허락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나쁜 며느리로 살아도 된다. 그리고 사실 어머니가 좋아서 하시는 일을 막는 게 불효 아닐까? 어머니를 존중하고 어머니의 방식을 지켜드리는 며느리가 진정한 효부라고 남편이 정의를 내려준 것이다. 고로 나는 허락받은 나쁜 며느리로 살아도 되는 이유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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