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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09. 2019

[중년 창업일기] 퇴근을 거부하면

"만다꼬"와 "현상유지" 사이에서

자유를 얻었다. 큰아이가  주부자처하기 시작했다. 빨래와 설거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스스로 말다. 아이들의 저녁 식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자유가 찾아온 것이 마냥 감사하지만 않았다.

하루를 마감하고 공방 의자에 나를 툭하고 던졌다. 소금에 절여진 배춧잎처럼 종일 타박타박거렸던 발을 운동화에서 꺼냈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 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나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비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를 시적화자가 엄마를 인식하듯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공방을 열고 가끔 서글플 때 이 시가 떠오른다. 아침에 사뿐 거리다가 저녁이 되면 발소리가 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을 때가 많다.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만다꼬"라는 말이 있다. 뭐하러 이 고생을 하는지, 뭐하러 집에서 드라마나 보며 취미생활이나 하지~이런 느낌의 말을 압축하면 "만다꼬"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만다꼬"라는 말이 혀끝에 맴돌았다. 발바닥은 배춧잎 같은 소리를 내고 있고, 입에서는 만다꼬를 반복하는 웃픈 장면의 중심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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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생 처음으로 집이 아닌 밖, 즉 공방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나에게도 야근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쌓인 일들 중 무엇부터 처리하면 마음이 시원해질지 생각했다. 친정엄마가 직접 만들어 보내신 돼지감자차의 구수한 냄새를 맡고 있는데, 공방 문이 열리고 남편과 작은애가 들어왔다. 이제 시작하려는데 김이 빠졌다. 위로하려고 왔는지, 야근을 반대하러 온 것인지 마음을 먹고 온 것 같았다. 빨리 나를 혼자 두고 먼저 귀가하길 바랐다. 사람들이 들락거려 종일 혼자일 수 없었다. 이제 맘 편하게 남은 일 좀 해볼까 하던 차였다.


남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한 준비된 멘트를 억지스레 했다. 준비기간에 비해 어설프지 않게 나온 인테리어와 이것을 구현해 낸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등록인원을 물어보더니 들뜬 목소리로 괜찮다고 거듭 말했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괜찮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괜찮네, 현상유지만 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

스멀스멀 불평을 닮은 감정이 올라왔다. 눈을흘기며 말했다.

"현상유지를 위해 창업을 했다면, 건물 소유주만 좋으라는 거네. 그럴 거면 왜 가게까지 차릴 이유가 없지"

날 선 내 말에 남편은 비수를 던지지 않고 묵직하게 쳐다보았다. 날카롭지 않은 눈빛이었다.


처음 작업실을 열어보라는 남편의 권유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 남편의 목적과 나의 목적이 만나 작업실을 구했고, 좋은 장소에 비싼 월세를 감안하고 계약을 했다. 현상유지만 된다면, 공간이 창출하는 시너지로 나는 글을 쓰고 남편도 공간을 일부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만 몇 년 도전해도 귀한 공부가 될 것이라고 의논했던 터였다. 그러니 남편의 기준은 "현상유지"였다. 나의 기준은 "작업실"이었다. 그런데 두 달 동안 글을 쓰거나 구상할 시간이 단 일도 없었으니, 내가 날 서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닌가.


"만다꼬"와 "현상유지"가 부딪히며 공중에서 끽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의 소리와 나의 소리가 공중에서 부딪혔다. 이런 공간에서 작게 아이들 가르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글을 논하는 장면을 오래도록 그려왔었지. 말없이 무겁게 바라보는 남편의 타이름에 스스로 인정했다.

"그래 기대를 낮추고 1년은 현상유지만도 감사하자" 나의 소리가 낮아졌다. 남편의 격려와 위로가 고마워졌다. 초심으로 돌아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공방을 둘러보았다. 공방 창업으로 가장 혜택을 받은 사람은 고래들의 토론과 토의로 가운데 등이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어떤 소음에도 조명 아래 책을 읽는 둘째 아이였다. 저 혼자 책 속에 빠져있어 어떤 소리도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우리 동네에 편하게 찾아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지. 독서에 취약한 초중고 좋은 팁을 주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었지.'


거침없는 파도가 한바탕 지나가고, 불필요한 감정과 상념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라앉았다. 언제 올라올지 모르지만 괜찮아졌다. 만약 앞으로 지금처럼 흔들릴 때면 나는 야근을 자처할 것이고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달려올 것이다. 그러면 공중에서 소리가 부딪히고 한바탕 눈빛으로 갈등을 조정하다 보면 나의 목소리는 낮아지겠지.


이렇게 반복하다 2년이 지나면
나는 완전 다른 나로 자라 있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돈을 지불해도 배울 수 없는 것을
이미 얻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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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애 데리고 먼저 집에 가줄래요? 글도 쓰고 일도 정리하고 도서목록도 재구성해야 하는데요?"

결국 나의 야근의 목표는 무산되었고, 건강해야 공방이든 가족이든 건사할 것이라는 설득에 공방 문을 잠그고 귀가하기로 했다. 


읽기와 쓰기는 배워야할 기술입니다

저절로 되는 소수 외에

배움이필요한

아동~성인반 개설중입니다

대구성인글쓰기,인문학독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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