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이 학교 앞에 있다. 정문 맞은편 최악이면서 최상의 장소다. 소음으로 보자면 최악이고 아이들의 소리로 보자면 최상이다. 아이들의 소리로 얻는 유익은 무엇이며, 요즘 아이들의 소리가 어디로 가는지 주관적으로 적어본다. 개인적 감정이입을 염두에 두시길.
오픈 후 멀리서 방문한 지인이 말했다.(아이들이 한참 체육 활동하는 시간에 방문했다.)
"자리 잘못 잡았네. 너무 시끄러워 어쩌나. 소리가 많이 들려 집중 잘 되니?"
그녀의 말은 기우일 뿐이다. 아이들의 소리는 나에게 여러 가지 흥미로운 효과를 준다.
1> 아이들 소리는 활력 자체다.
듣는 이에게 활력을 전달한다. 오늘 하루 어떻게 끌고 가나 하다가도 운동장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와 응원소리는 살아보라는 응원가로 들린다. 소리가 크면 클수록 내 몸의 세포들이 더욱 생생해진다.
2> 아이들 소리는 노래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도 즐거워한다. 보도블록 사이 삐죽 튀어나온 풀에 머리를 맞대고 재잘거린다. 야외수업으로 학교 뒤 꽃밭에 무당벌레만 봐도 모두 까르르 넘어간다. 그 소리 모둠은 다양한 악기가 만드는 하모니처럼 들린다.따로 음악을 틀지 않아도 될 만큼 다채롭다.
3> 아이들 소리는 건강함이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면 건강이 떠오른다. 어른은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떠들지 않는다.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조심스레 상황을 파악하고 입을 다문다. 낄 자리와 빠질 자리를 잘 찾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여긴다. 타자를 관찰하고 자아를 가다듬는다. 손쉽게 자기주장을 하지 못한다. 후폭풍까지 생각하며 복잡하게 살기 때문이다. 말해야 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이들처럼 말한다면 마음의 병도 낫게 하지 않을까?
4> 아이들 소리는 현재형이다.
아이들은 현재 중심이다. 해사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들, 달려와 오늘 있었던 일을 순삭 하며 읊어주며 깔깔거린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도 돌아서 웃으며 친구에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굣길, 친구와 다퉈 눈물을 그렁이다가도 엄마를 만나면 종일 못다 한 이야기를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 그런 모습에서 현재를 사랑하는 아이들의 단순함을 본다.
매일 아이들의 소리에 수혈받으면서 서너 번 다짐을 한다.
망하지 말고 학교 앞에 마을 터줏대감처럼 오래 존재하자. 월세가 비싸더라도 계속 버티자. 너무 복잡해지지 말자. 시시한 것에도 행복을 느껴 툭 털고 친구와 다시 어깨동무하듯 매일 가벼운 것들을 툭 털고 힘을 내자.
덧붙이는 말:
아이들이 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아이들의 각자 스케줄이 너무 바쁘다. 놀이터에서 온종일 구슬치며 노는 아이는 없다. 놀이터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 운동장은 한적해진 지 오래다. 아이들의 소리는 어디로 가버렸나?
학교 앞에 위치해 소리를 수집해서 좋긴 하지만, 놀이터로 뛰어가는 아이의 외침보다는 부모님에게 다음 스케줄을 묻는 말들이 차고 넘친다.
아이들이 만드는 화음이 오후 햇살 늘어지듯 오래 함께면 좋겠다. 아직 바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의 복잡한 스케줄이 단순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