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파하면 교내 구석진 복도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는다. 교내 휴대폰 사용은 금지 조항이지만 교칙의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아이들은 용케 안다. 학교밖에도 비슷한 장면을 찾을 수 있다. 학원 수강을 마친 뒤 아이들은 상가 뒤나 내부 계단, 근처 놀이터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다. 데이터 제한이 있는 아이들은 와이파이가 잡히는 장소를 잘 찾는다. 소문은 금세 퍼지고 아이들은 소문을 따라 곳곳에 와이파이 유목민으로 서성거린다. 학교 밖에서 휴대폰 사용을 통제할 명분은 없다.
부모님이 앱으로 허용해주는 시간만큼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아이들은 귀족에 속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무료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니는 것은 마찬가지다. 매번 엄마에게 데이터 사용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하는 부모님은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부모님이 집에 있어도 아이들의 동선을 알 길이 없다. 아이들끼리 모종의 연대의식이 있는지 부모님에게나 친구 엄마에게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 순간 포착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아이들의 사생활이다.
아이들이 건물 사이, 계단 구석, 놀이터 벤치에 모여 앉아 팀 게임에 접속해 즐기는 장면은 아주 흔하다. 추운 날씨 손이 빨갛게 변한 아이들 몇에게 말을 건넸다.
"추운데 왜 거기에 쪼그리고 있니?"
"다음 학원까지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비어요"
신도시라 아파트 단지 내 학교가 있으니 집까지 거리는 족히 5분도 안 걸린다. 멀어서 못 간다는 아이는 많지 않다.
"집에 가면 게임 못해요. 어쩔 땐 2시간이 비는데 그땐 완전 꿀이죠."
추워서 공방으로 부르고 싶지만 공방에 들어와 책을 읽을 리가 만무하다. 몇 번 아이들을 불렀더니 의자에 앉으면서부터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작은아이의 경험을 빌어보면 이렇다. 학원 마치고 한 시간 가량 시간이 맞아 놀이터에서 놀자고 달라가면 반수 이상의 아이들은 자리에 쪼그려 앉아 게임하는 친구를 구경하거나 본인들도 게임을 한다. 함께 놀겠다고 시간을 맞춰 놀이터로 달려가서는 하는 일이 게임이니 경찰과 도둑이든 그네 타기든 재미가 없다고 했다.
"쪼그려 있는데 춥지 않니?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갔다 다시 오면 어때?" "집에 가도 못 쉬어요. 엄마가 공부하라거나 책을 읽으라고 해서 안 가는 게 나아요. 어차피 집에 가면 저녁에도 계속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뭐하러 일찍 가요?" 아이들은 해가 저물 때까지 학원가를 서성인다. 그러다가 출출하면 편의점으로 달려가 불*볶음면을 간식으로 먹는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인데 말이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심각한거겠지.
1000명이 넘는 대형 초등학교 학생 중 운동장이나 동네 놀이터를 뛰어다니며 땀 흘리는 아이들을 찾기가 어렵다. 아이들의 빈 시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오늘도 오지랖 삼매경에 빠져 머리를 굴려본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은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