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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16. 2020

폰을 빼앗으면 다 될까?

네가 주인이 되어야 해

아이의 스마트폰 중독에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다. 오늘 글은 생활에서 관찰을 통해 아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부모 태도를 다루고 싶다. 공개적으로 부모 옆에서 폰 사용하기. 시간을 정하고 하기. 부모가 게임의 세부내용에 관심을 갖고 아이와 공유하기, 폰 사용의 주인의식 가르치기 등의 방법이라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증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책도 읽고 글도 쓸까 해서 카페에 들렀다. 한참 열중하고 있는데 앳된 목소리의 엄마가 아이와 들어와 함께 폰을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이 공부에 대한 훈육을 하는 줄 알았다. 조금 지나자 공부가 아닌 주제의 대화였다. 맛난 음료를 먹여 아이 기분을 조절한 뒤 잔소리를 하는 분위기인가? 젊은 엄마의 입에서 별의별 게임 용어가 튀어나왔다. 아주 어여쁜 목소리로 어린 아들에게 게임 방법이나 아이템에 대해 묻고 있었다.


보통의 동네 카페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엄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구석에 소복하다. 각자, 혹은 한 명의 폰에 매달려 게임을 한다. 또 다른 장면은 이렇다. 엄마와 아이가 마주 보고 아이는 문제집을 펼쳐두고 엄마는 책을 읽는다. 가끔 아이의 문제 풀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를 매겨준다. 아름답기보다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어두운 기운이 풍기는 장면이다.


오늘 장면은 자주 목격하는 것들과 달라 멀리서 웅얼거리는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팀으로 게임하면 실력이 좋은 친구랑 하면 좋지 않아?" 게임에 관심 있는 척하며 다가가 훈육을 하려는 엄마의 의도는 아닌 듯했다. 보통 게임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모와 자식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게임에 대한 여러 질문을 하면서 입질이 왔다싶으면 부모는 의도를 드러낸다. 게임시간, 게임의 부정적 영향, 게임해서 망한 형아들 이야기를 쏟아낸다. 결국 아이와의 게임 관련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아이는 더 숨어 게임을 하기로 결심하게 만든다.


젊은 엄마는 질문이 디테일했다. 진짜 게임 초보가 고수에게 하는 질문이었고, 진심 어린 호기심과 흥미가 묻은 흥겨운 질문이었다. 아이도 신이 난 표정으로 박학다식한 게임 전문지식을 방출했다. 설명을 곧잘 해서 다시 보았더니 저학년이었다. 엄마와 한참 게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젊은 엄마는 콧노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 시간 하기로 약속했지? 엄마는 다른 것 검색할게" 그러고 카페 내부는 조용해졌다. 아이는 게임, 엄마는 온라인 문화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한 시간 못되자 아이는 문제집을 꺼냈고, 엄마의 웃음과 아이의 웃음이 뒤 썩여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주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아이의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다. 그런데 정작 금지와 으름장을 놓는 것 외에는 방법을 모른다.

아이들이 즐기는 게임에 대한 공감대도 없는 부모, 스마트폰 사용법을 아이보다 모르는 부모의 '스마트폰은 악한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식의 잔소리와 금지는 아이의 억울함을 키우기 쉽다. 부모가 아이의 세계를 알고 공유하면서 방향을 찾아가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건전하고 다양하게 활용의 본 보이기


어떤 학부모가 스마트폰 관련 일화를 전했다.  

엄마: 야, 게임 좀 그만해라. 종일 뭐니? 숙제했어?

아들: 아빠도 집에서 매일 게임만 하잖아.(할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설득해야 하기에 논리를 찾고 찾아)

엄마: 아빠가 손님을 앞에 두고 손에 폰 못 놓고 게임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될까? 아빠가 자기 시간 조절 못하고  게임만 하니?

아들: 아, 그건 그렇네.


아이의 아버지가 일도 손에 놓고 게임만 했다면 아이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 부모가 스마트폰을 게임과 sns 소통의 용도로 쓰는 장면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스마트폰은 놀잇감이나 손전화 정도일 뿐이다. 부모가 먼저 폰으로 독서, 강연 듣기, 검색, 뉴스를 청취하고 아이와 이야기도 나눈다. 쇼핑도 하고 전자금융거래 업무, 사전 찾기, 한자 공부, 영어회화를 한다. 메일을 보내고 음악을 들으며 활용한다면 아이는 스마트폰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어쩌면 아이들이 더 다양하 기능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공방 아이들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상담을 가끔 한다. 선생님이 어떻게 폰을 사용하는지 보여준다.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놀라운 기술을 제외한 몇 가지에만 머물렀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고 사전 찾기부터 하기 시작한다. 한자어를 찾아 다양한 용례를 보게 한다. 뉴스를 찾아보도록 한다. 아이의 눈이 점점 커진다. "이제 네 말과 행동으로 엄마를 설득하렴. 공부에 도움되게 사용할 수 있겠다고......그런데 마음 먹은대로 실천하다가 결국 스스로 제어를 못하면 폰압은 각오하렴"

 

-음지에서 나와 대놓고 하기.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금지할 것이 아니라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권위와 지혜가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아니, 스마트폰의 건전의 사용을 본으로 보여줘야 한다. 부모가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유익한 사용을 한다면 아이들도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폰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가 억울한 얼굴로 공방을 찾았다. 씩씩거리는 거친 숨에 위기를 느꼈다. 부모님이 자신이 무슨 영상 보는지 묻지도 않고 폰 압(폰 압수)을 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행동할까 봐 가라앉히려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최근 어떤 기계에 호기심을 느껴 몰두한 상태였다.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보느라 종일 손에 폰을 놓지 않으니, 폰압 한 부모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무턱대고 아이를 오해하고 불신으로 낙인찍으면 반감이 더 커진다. 이런 부모의 억지는 아이를 더 음지로 내몬다.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폰을 들고 있으면 혼 나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네가 요즘 관심 있는 분야를 말하고, 영상으로 찾아보니 도움이 된다는 것을 대놓고 말해야 해. 증거가 없으면 의심받아. 네가 정당하면 더 당당하게 부모님 곁에서 하렴"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이는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이야기했고 부모님이 귀 기울여 듣고 호기심 분야의 재료를 사주는 등의 노력으로 아이는 멀리하던 수학 공부에도 더 집중하게 되었다.


-자율적 관리의 주인은 바로 너!


엎치락뒤치락 아이와 줄다리기하며 위의 과정을 겪다 보면 일정 수준의 기준 찾게 된다. 자녀와 부모 서로의 적정선의 신뢰와 넘어서지 않을 기준. 스스로 스마트폰을 누리고 통제할 수 있는 주인으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위의 과정을 겪으며 자율적 제한과 관리능력을 가르쳐 준다면 좀 더 일찍 스스로 통제의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넌,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존재고 게임에 노예처럼 끌려다닐 존재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놀라운 기능이 100이라면 3도 못쓰고 있으니 함께 알아보자"라는 의식으로 하루하루 대화하고 의논한다면 성인이 되어도 "폰 쫌 그만해라"는 소리를 부모가 하지 않게 된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 자존심에 스크래치 날 일도 없다.

스마트폰은 손안에 컴퓨터라고 한다. 모든 세계와 연결하는 가상의 공간에 상상할 수 없는 지식정보가 저장 이동, 활용된다. 그런데 부모도 그 편리와 상상밖의 기능에 미숙하다. 그래서 부모도 스마트폰을 이해하고 누리고 관리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의 중독을 염려해 손에 스마트폰을 빼앗는 것은 모든 것이 연결되는 가상의 공간, 지식과 정보의 바다를 맛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미래를 살 아이들에게 어쩌면 중요한 통로와 도구를 빼앗는 것과 같다. 문명이 진보하는데도 자녀를 자연인으로 만들어 열대우림에 살게 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활용을 더 잘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게 씨름하는 게 더 안전하고 빠를 것이다. 금지는 결국 과한 갈증과 몰두를 만들어낸다.


필자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금지한 적 없다. 그렇다고 제한 없이 아이의 의지를 믿고 맡기기만 하진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쿡쿡 찔러 긴장하게도 하고, 무엇을 주로 시청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었다. sns로 또래와의 소통의 장단점을 이야기 나누거나 한 번 정도는 폰을 냅다 던져 남은 폰값에 이를 갈기다. 이런 속 시끄러운 과정을 통해 염려와 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주제를 무난히 넘어왔다. 아이 스스로의 힘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스마트폰은 악으로 치닫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다.



*섣불리 아이의 힘을 키운다거나, 아이의 양심의 힘을 믿게다고 결심하고 용기백배해서 맡기면 갈등이 더 커질수 있습니다. 아이는 아직 아이니까요. 충분히 납득하도록, 스스로 조금씩 약속하고 순차적으로 지키게 훈련해야합니다. 그 때까지는 부모님은 부지런하고도 세밀하게 관찰하되 분노의 쌍절곤은 휘두르면 안될 것입니다. 아이의 성장은 지난한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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