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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28. 2020

죽은 게 아니네, 살아있눼!

옆 건물 수학 원장의 누님이 이사를 가면서 식물을 넘겨주었다. 자식 같은 식물을 버리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한다. 평소 공방 입구에 화원처럼 식물을 키우던 나에게 넘겨주면 어떤지 연락이 왔다. 가까운 원장님의 부탁에 반은 좋았고 반은 걱정스러웠다. 어떤 식물 일지 몰라서 받아서 잘 못 키우면 난감한 일이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입양 보내주십사 했다.


도착한 탑차 한가득 화분이었다. 화분의 수는 족히 50개 이상 될 듯했다. 순간 왜 처리하기 힘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음만큼 다 받을 수 없어 큰 화분은 돌려보내고 중, 소 크기의 작은 화분만 받았다. 쪼끄만 15평 공방에 더 많은 식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여기가 글 공방인지 식물원인지 물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받은 식물 중 다 죽어가며 수려한 모양새라곤 없는 다육이가 있었다. 온갖 상처에 잎은 쪼그라들고 벌레가 꾀었다 지나간 흔적이 많았다. 몇 번을 버릴까 고민하면서도 분갈이를 해서 잎을 떨구고 짧은 기둥만 남겼다. 거의 말라죽은 채 기둥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육식물은 잎꽂이도 가능하지만 줄기만 있어도 잎이 다시 난다.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갔다.  


작은 기둥이 관상용으로는 부족하니 눈이 가지 않았다. 겨울 내 미동도 없고 초라한 행색에 들여다볼 마음도 없었다. 봄이 오기 전 정리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잊힌 다육이는 미동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어느 날 화분 위치를 재배치하면서 눈을 의심했다. 아기 손가락 같은 기둥에 작은 잎들이 다글 거리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던 아이가 혼자 애를 쓴 거 같아 기특했다. 봄이 한창이라 꽃샘추위에도 콧노래가 나오는데 다육이 때문에 더 흥에 겨워 공방을 찾는 아이들에게 빅뉴스라고 널리 알렸다. 


실패라고 통보받을 때의 아픔과 자괴감이 자주 반복되자 도전은 남의 일이 되었었다. 난공불락의 성벽을 기어오르는 꼬마가 된 기분을 스스로 차단했다. 포기하고 멈춰버렸다. 다육이의 빅뉴스를 떠들다가 내 속에 멈춰버린 시계를 기억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듯 희망을 장착하고 시계침을 제자리로 돌렸다. 공모전 소식을 찾아보았더니 신춘문예는 물 건너갔지만 각종 공모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눈을 닫고 마음을 닫아 보이지 않았을 뿐. 


그동안 다른 장르로 연습하던 글을 여러 공모전에 보냈다. 퇴고와 추가로 더 쓰는 글 때문에 며칠 잠을 줄였다. 물론 낙방 소식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지겠지만 기다리는 동안은 행복할 수 있겠다. 게다가 기다리면 열정의 태도가 생겨 다른 글도 도전해 볼 수 있다. 


다육이가 죽은 듯할 때 다시 살 것이란 희망은 기다림을 가능하게 했다. 포기했다면 벌써 버렸을 것을 끌어안고 있었다. 비단 식물만 그런 게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가 찾아와 꽃처럼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 기회는 내가 가져올 수 없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쉽게 눈에 띄라고 벌거벗었고, 사람들이 쉽게 붙잡으라고 앞머리가 무성하다고 한다. 지나고 나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뒷머리가 없고 최대한 빨리 사라지려고 발에 날개가 달렸다고 한다. 공모전의 결과가 목표가 아니라 원고를 쓰고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의 열정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기회를 위한 준비가 목표다.


다육이 덕에 희망이라는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다시 도전을 시작했으니 봄 같은 소식을 기다려야겠다.  낙방이면 다시 도전하고 수상하면  한턱 쏘면 된다. 누구에게? 브런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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