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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12. 2020

그저 그런 아이를 칭찬했더니

아주 뛰어난 아이와 그저 그런 아이 사이에 얼마나 넓은 간격이 존재할까? 아주 뛰어난 아이라거나 그저 그런 아이라는 정의도 애매하다. 그리고 이런 발언을 하면 공부를 잘하거나 영재성 있는 아이를 떠올리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무섭다.


공부나 기능에 뛰어난 아이와 평범한 학생의 차이를 나는 잘 못 느끼는 편이다. 다 좋게 보려는 마음 때문이고 아이들은 고유한 것을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다중지능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아이들의 고유함보다 성적과 아이큐를 논할지도 모른다.


공부에 특화된 아이가 칭찬받고 유망주가 되던 시대는 지고있다. 수많은 서적과 강연에서 그갓을 외치고 있다. 학부모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시대는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도 그중 깨어있는 부모님의 조금 다른 교육방향으로 특별한 분야에 남다른 성과를  보이는 아이가 많아지고 있다. 줄 세우기로 대학에 목숨 거는 분위기가 중화되는 것만 같아 반갑다.


아이마다 다른 끼와 호기심이 오늘의 논점이 아니다. 자기만의 분야에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와 달리 너무 평범하고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보통의 학생 한 명을 소개할까 한다.


"선생님, 너무 일찍 왔는데 조금 놀다가 시간 맞춰 오면 어떨까요?"


이 학생은 뛰어난 분야가 없는 학생이다. 운동을 잘하는지 본 적이 없지만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불러내는 것과 늘 귓가에 땀을 흘리며 들어오는 모습에 운동을 좋아하는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잘하는지는 모르겠다. 뛰어난 게 없다는 나의 평가가 편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일전 몇 가지 사건으로 볼 때 뛰어나지 않지만 인성이 준비된 학생임에는 분명하다. 교과서를 보니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오래 생각해도 글 한 줄 쓰기 어려운 학생이다. 당연히 책 읽기도 학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다른 과목의 상태를 짐작하건대 선행은 생각하지 못하는 보통의 머리를 가진 학생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인성만은 백점을 주고 싶다.


이 아이는 출필고 반필면을 장착했다.

아이는 인사를 장착했다.

아이는 시키는 것은 유순하게 믿고 따랐다.

아이는 어려운 과업에도 우직하게 성실을 다했다.

아이는 엄마를 생각할 줄 알았다.

아이는 약속에 철저했다.


 평소 이 아이를 겪어온 나는 아이가 참 잘 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늘 아이가 약속을 하고 지키려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칭찬받아 마땅한 학생이며 미래가 기대된다고. 비록 성적이 뒤떨어지고 낮은 수준의 독해력을 가졌고 이해력이 딸린다. 영특한 머리와 높은 어휘력과 남다른 이해력으로 공부도 잘하고 과학에도 끼가 있고 노래도 잘하는 엄친아가 아닌데 기대가 되는 아이다.


인간성의 부재가 갈수록 강해지는 과학화, 기계화 사회에 인간됨을 장착한 아이는 분명 큰 일을 할 아이가 될 것이다. 학부모 중 자녀가 싸가지가 없어도 성적이 좋으면 눈감아주는 예가 많다.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성적을 높이거나, 그것도 미미하면 부모가 나서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오해를 덜받거나 사건이 생겨도 수월하게 넘어간다.  교육에도 공정함과 진실함은 요원해 보인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요령을 부린다. 요령을 부리는 이유는 '안 보면 모르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요령으로 눈가림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는 학생이 많다. 사교육의 현장이지만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그대로 드러난다. 눈가림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지각을 쉽게 생각한다. 선생님과의 약속에 5분 10분 늦는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린다. 누구 때문에,  나오려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거나, 신발끈을 고쳐 매다 늦었다는 둥 뻔한 이유를 댄다. 결국 그런 불시의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더 서두르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미룬다. 시간이 자신의 것이며 눈에 안 보이는 시간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칠 줄 모른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지각이라는 것만일까?


오늘도 약속된 시간에 공방을 찾아온 아이는 자신의 피치 못할 친구들의 부름 때문에 조율을 부탁했다. 나의 허락이면 놀고 올 수도 있고 다 읽고 나가야 할 수 있다. 평소 아이를 생각하면 불허해도 지킬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나에게 인격적으로 묻지도 않고 딴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만 있다. 그렇게 비효율적인 것보다 차라리 의논하는 게 좋은 태도다.


"놀고 오면 더 잘 읽겠니? 얼른 읽고 가는 게 좋겠니?"

당연히 답안은 전자였다. 그리고 하나의 약속을 했다. 정확히 45분 후 돌아오는 조건. 시간이 금세 지났고 설마설마했던 아이는 약속 1분을 앞두고 교문으로부터 뛰어 공방으로 달려왔다.


약속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나와와 약속에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달렸다.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애쓰는 모습은 상대를 존중할 때 나온다. 나의 권위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비중을 두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곧은 학생을 통해 과한 존중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귀밑으로 땀이 흘러내리는데 평소보다 책장을 잘 넘긴다. 펄떡이는 심장을 고려해 차분하고 짧고 재미와 위트가 있는 책을 몇 권 권했다. 즐겁게 발산하고 와서인지 표정이 좋고 독서 속도가 일취월장이다.


약속을 대하는 태도 하나로 아이를 다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아이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 성적이 낮고 어려운 책도 못 읽고 단 세줄도 쓰기 어렵다는 것으로 아이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아선 안된다. 가르치는 사람은 더 그래선 안된다. 더 많은 칭찬, 그리고 고맙다는 표현으로 아이에게 칭찬 폭탄을 던졌다. 평소 그대로인데 칭찬받아 아이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당황 해서 일시 정지한 아이 어깨를 쳤다.


"어서 집에 가서 씻고 밥 먹어라. 땀 냄새 참 꼬숩다(구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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