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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25. 2020

혹시 영재일까 기대했나요?

비교와 기준 버리고

영재를 소개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주인공의 자기 주도성과 몰입이라는 측면이 아주 흥미롭다. 모든 아이들에게 있을법한 몰입일 텐데 우리 집에는 찾을 수 없는 능력을 보면 괜히 옆에 앉은 아이를 쳐다보게 된다. 주인공은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면 시키지 않아도 찾아보고 따라 한다. 자기 주도적이다. 그것을 습관으로 자리 잡고 난관 앞에서 부모가 뚫고 나가도록 코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잘 실현되지 않는다.


물리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아이가 출현했다. 온 집안이 빼곡하게 책장이다. 그 책을 아이는 다 읽었고, 필요한 영역으로 확장을 위해 부모가 전국의 책방이며 중고서점을 뒤질법한 포스가 느껴진다. 우리 집 아이에게만 없는 모습이 아니라 코치해야 할 엄마인 나에게도 별로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아이가 코로나로 몇 달 베이킹에 올인했다. 영재가 아닐까 내심 기대했나보다. 최근에 십자수에 홀릭되어 실망이 찾아왔다. 아주 미미하지만 없다고 말 못하는 중이다. 관심사의 이동이지만 이전에 수준을 올려둔 베이킹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 아침도 포도젤리를 만들었다. 나의 실망과 상관없이 아이의 새로운 관심사에 내가 해줄 수있는게 별로 없다. 그래서 사실 조금 무관심 했다. 그것이 아이의 흥미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한 것 같아 미안했다.


십자수는 내가 좋아하는 영역이 아니다. 물론 못하지 않지만 거들떠보기도 싫다. 이유는 10여 년 퀼트로 바늘만 붙들고 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는 재봉틀이 기본형과 오버로크형 모두 있다. 자수바늘과 실 세트도 있다 그런데 바늘 관련된 것을 이제는 꺼내기도 싫다. 나에게 새로운 바늘이 글쓰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십자수에 관심을 보이자 재료를 준비해줬지만 여러 가지 장벽이 있었다. 매듭짓는 게 일반 바느질과 다르다. 영상을 보며 따라 하기에 베이킹만큼 친절한 크리에이터가 없다. 내가 봐도 상세한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는 실망하고 다른 영상을 찾는다. 이럴 땐 엄마가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싫어하는 영역이라 물꼬를 터줄 수 없다. 베이킹할 때와 엄마마음이 다르다.


아침에 키홀더 하나를 도전하겠다고 끙끙거리는 아이가 애처롭다. 재료를 샀던 곳에 가져가 고쳐오겠노라 했더니 아이는 화색이 돈다. 몰입과 자기 주도와 목표지향, 혹은 목표를 향한 인내심이 영재의 덕목일 텐데, 엄마의 부족이나 귀찮음이 발동하면 아이를 가로막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직 초등학생이 바느질은 일러. 조금 더 크면 해봐"라고 말한 걸 후회하는 중인데, 내가 다시 바늘을 들어야 아이의 호기심이 충족되려나, 일단 키홀더를 고쳐 가져 가고 바늘을 들어야겠다. 어제저녁부터 같이 해보자는 아이의 제안을 못들 은척 하고 누워있었던 게 영 마음에 걸린다.


베이킹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영재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의 인내와 몰입을 나는 부러워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 아이가 멈춘 게 아닌데, 몇 달 몰입한 것도 칭찬할 만한데 누구와 비교하니 내 아이가 어설퍼보인다. 부족은 아이만 볼 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와 비교. 기준을 세우면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게 육아의 시선 아닐까.


아이야, 아침에 젤리 뚝딱 만들어 엄마에게 먹여주고 십자수를 한다고 끙끙거리는 너의 열정을 응원해. 어떤 기준도 너를 재단하지 못하게 버리기로 약속해. '어서, 다시 보기에 올려둔 영재 프로그램을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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