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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19. 2020

80분의 몰입으로 생기는 일

"너를 믿어. 넌 그런 아이야."

활달한데 호기심이 일면 집중하지 못한다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밝고 사교적이며 사람에 관심이 많다. 사람에 관심이 많은 만큼 식물의 생장에 유독 시선을 보낸다. 반려동물뿐 아니라 발바닥 아래 개미부터 벽에 달라붙어 허우적거리는 거미까지 아이의 취향은 고스란히 생명에 있다. 생명의 역동에 눈이 돌아가니 가만히 앉아 있기는 죽으란 소리와 같다. 선생님의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 친구들에게 지적당하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호기심을 꾹꾹 눌러왔을게다. 그래야 착해졌다, 참하다, 정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며 속상한 엄마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해 참고 견디는 중일 테다.


그런 칭찬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갈 아이에게 필요한 칭찬이다. 나의 의사나 감정과 상관없이, 나의 기호와 의문을 잠시 내려놓을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에디슨처럼 학교에서 몇 달 만에 교수 불가라는 판단에 쫓겨날 정도의 호기심은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웠다.

그 아이에게는 에디슨의 어머니와 같은 엄마가 든든히 뒤를 지키고 있었다. 1년 반을 지켜보았지만 그 엄마는 일관성이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천성이 인내심 덩어리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고 참으며 아이를 위했다. 모진 말 비난의 화살을 쏘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를 향한 주변의 다양한 피드백을 분노로 받지 않고 아이 입장에서 공감을 해주었다. 아이의 유일한 편이 엄마처럼 보였다.


그 엄마는 아이의 독서력이 또래보다 늦고 낮아도 개의치 않았다. 성장한다면 멈추지 않은 것임을 알기에 작은 순종, 미미한 변화에도 기뻐했다. 공방에 온 지 1년이 걸려 책을 가리더니 2~3권을 읽는다. 그것도 읽기 편한 전래 위주지만 그것도 큰 발전이었다. 자신에게 조금만 과부하가 걸릴라치면 바로 인상이 달라진다. 완급조절. 아이가 버겁지 않으면서 살짝 수월한 느낌에 머물게 하면서 아주 느리게 아이를 당겼다. 나의 노련한 밀당은 이럴 때 요긴했다.  

코로나가 지나고 아이는 엄마와 건강한 토론을 통해 다시 공방을 찾았다. 단행본 책, 글밥이 더 많은 책을 목표로 했다. 아이의 성향에 맞춰 억지로 하지 않기로 했다. 튕겨나가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재미를 발견할 때까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성장에 놀랄 때까지 믿어주고 칭찬과 격려와 의논으로 가보기로 했다.


공방에 들어와 생명을 살피는 건 여전했다. 입구에 줄 선 많은 식물들과 교감을 한다. 백여 마리까지 늘어나는 구피 무리들에게 눈빛을 보낸다. 먹이를 주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5분만 쉬어" 무얼 했다고 쉬라는 걸까. 나는 공방을 찾는 아이들에게 첫 과업으로 '쉬라'고 말한다. 고작 2분 쉬어, 5분 쉬 어지만 이마에 맺힌 땀을 식히면서 마음의 스텐바이를 하는데 5분 이내면 충분하다.


그 아이는 '쉬어'라는 말에 이내 화색이 돈다. 스케줄을 해치우고 빨리 뛰어놀고 싶던 마음 누그러지는 모양이다. 공방의 원칙을 아기에 폰도 가방에 넣고 5분을 어슬렁 거린다. 거기에 1분을 더 준다. 쉬고 또 쉬는 여유. 여유도 없이 쫓기며 허덕이는 삶을 맞이할 아이에게 여유라는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어제 읽던 책을 꺼낸다. 제법 두께가 있는 책을 3일에 걸쳐 읽겠다고 어제 엄포를 놓았는데 잊었는지 저도 모르게 책장을 척척 넘긴다.


물 마시기 위해 어슬렁거리지 않고 사탕 한 알 먹으러 나오지 않고 꼬박 80분이 지나도록 고요가 임했다. 이런 적이 별로 없었다. 몰래 기웃거리니 책 뒤에 서너 장이 남았다. 이럴 수가. 집에서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는 아이 엄마의 말을 확인하는 순간. 공방을 편하게 생각하는지 공방장을 편해하는지 늘 많이 읽지 않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습관성 멘트가 사라져 버렸다.


고개를 든 아이는 열띤 표정이다.

"1시간 20분이 지났다. 알고 있었어?"

"네? 제가요? 진짜요?"

아이는 상기되고 벙찐 표정이었다.

"선생님이 너를 1년 넘게 봤지만, 오늘은 별로 더 멋있네. 기적이구만. 너 대단한데?"


이야기의 마력에 빠지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늘 책의 권수를 세고, 글을 쓰면 몇 줄을 쓰냐 따지던 아이가 이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는 봇물 터지듯 뭐가 터지기 시작했다. 돌고래 박수를 보내주자 아이는 쑥스러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의 엄마가 저녁에 들렀다.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너무 행복해해요. 자기 자신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꺼운 책을 다 읽어버렸다는 것을요"

분명 아이는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을 듯 늘 이를 악문 느낌이었다. 하라는 대로 해주지만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를 자주 보여주던 아이였다. 끈질긴 엄마의 포기하지 않고 돕는 손, 그리고 뭐에 맞는지 모르지만 공방의 신기한 매력과 이야기의 마력에 술술 말려 어느덧 한 계단 올라가고 있다.

그동안 윽박지르기보다 선택할 기회를 주고 이유를 들어보았다. 아이의 엄마와 나의 눈치 못 챌 다양한 작전이 빛을 뿜는 순간. 아이의 작은 변화는 기적이다. '해보니 된다'는 자긍심은 강한 힘을 가졌다. '해보니 되더라'는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몰고 온다. 내일이 기대된다. 더 뭘 할 수 있을까 어슬렁거릴 아이가 그려진다. 비록 앞으로 예전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추적추적 비가 오면 눅진한 마음에 하기 싫다며 발로 툭툭 책장을 찰 수도 있겠지만, 성장과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다. 봇물이 터졌으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오늘 공방을 시작한 나의 이유에 보람 하나 더 맺혔다. 손수 기르는 방울토마토 나무에 빨간 토마토 몇 알 같은 보석이 반짝거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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