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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04. 2020

초6남아, 속독보다 '느독'이지.

너는 익어서 돌아왔구나

*느독-제가 지은 말입니다. 느린 독서라는 뜻이죠. 느린 아이가 느리게 읽는 것을 지지하는 말입니다. 느려도 되니까 기다려주겠다는 부모의 결심을 담아봅니다.


6학년에다가 남자아이란 엄마들이 다룰 수 없는 다른 세상 사람과 같다. 코로나 19 사태가 잠잠할 때, 31번 슈퍼 확진자의 출현하기 전 등록했던 남학생은 3주의 짧은 수업 이후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이는 처음부터 대책이 필요했다. 초6이지만 초3 정도의 읽기 속도와 초4 정도의 어휘력을 가졌다. 어머니의 오랜 설득과 대안에도 읽기 영역에 진보가 없었는지 마지막 희망으로 공방을 찾았다. 금세 읽을 책도 또래보다 2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독서경험이 무에 가까웠고 모든 책이 처음이었다. 집중은 하지만 느릴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낱말에 걸리면 넘어가지 못하는 게 이유였다.  모르는 어휘가 20프로 정도면 적당한 호기심을 일으켜 읽기에 탄력이 붙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려운 어휘의 비율이 높아지면 읽은 줄을 못 넘어가 읽고 또 읽다가 책을 덮게 된다. 어휘력이 낮은 아이가 느리게 읽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3주 만에 아이는 한 시간 동안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고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느리지만 줄거리를 이해도 나아졌다. 책이란 존재와 어색하지 않은 관계에 들어선 것이다. 재미가 붙을 시점에  코로나 확산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임시휴업. 그리고 7주 차만에 아이를 다시 보내신다 연락을 받았다. 학원도 중단한 상태라 학습결손을 우려한 어머니는 겨우 구축한 생활습관도 무너질 위기라 독서습관을 잡기 위해서라도 보내겠다 하셨다.


휴업할 동안 어머니는 속독에 대해 물어왔다. 너무 느린 독서 속도 때문이었다. 6학년인데 중학교가 코앞인 위기에 아이의 읽기는 처참하기까지 하다 느끼신 것이겠지. 빨리 많이 읽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독서는 기교를 가르쳐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설득했다. 책 읽는 즐거움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하니 믿고 기다려주면 반드시 성장할 것을 믿으시라 신신당부했다. 아이를 믿으라는 말이 얼마나 손에 잡히지 않는 말인지 안다. 아이를 믿지 않으면 닦달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와 어떤 의논을 어떻게 했길래 아이는 더 반짝이는 눈빛으로 공방 문을 열였다. 그간 어지간히 지겨웠거나 엄마의 잔소리 총공격에 몸살이 났던 것일까. 공방으로 피신 온 듯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생각보다 아이는 느린 속도에도 재미있다고 반응하며 책에 몰입했다. 30분이면 기지개를 켜던 아이가 며칠 만에 한 시간이 금세 지났다고 웃는 아이로 변했다. 고즈넉한 오후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는 자신이 기특하고 멋있다 느끼는 것만 같았다. 아이가 즐긴다는 증거는 일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 오후 아이 어머니를 통해 찾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 친구의 학모와 함께 방문했다. 평생 책이라고는 무관심한 아이가 공방을 다녀온 뒤부터 작품명과 작가를 대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자아이는 초4만 지나도 엄마라는 존재와 허그도 하지 않는다는데 아들의 독서 수다에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하다. 어머니의 들뜬 표정, 처음 공방을 찾을 때 아이의 상태를 걱정스레 말씀할 때와 사뭇 달라진 표정이었다.


"어머니제 시작인데 뭐 그리 놀라세요? 아드님은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존재라니'정도여서 으쓱해서 그래요. 앞으로 어디서 아는 게 나오면 더 으쓱할 거예요. 그러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알게 되면 그때부터 스스로 즐기게 돼요. 다만, 속독으로 시간과 양으로 승부를 거는 건 반대입니다. 느려도 되니 꼼꼼히 천천히 읽도록 꼭꼭 기다려주세요. 다그치지 마세요. 급하면 체합니다."

 나는 독서력이 떨어져 걱정하던 아이가 변하고 있다는 말에 사실 속으로 놀랐다. 생각보다 빠른 변화여서 그렇다. 변화의 조짐은 미세해도 확실하다. 아이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아는 사람이 바로 엄마라는 존재다. 그 변화를 알리지 않고는 못 견뎌 이웃과 함께 방문한 아이 엄마의 희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변화로 인한 기쁨도 기쁨이지만 이 시국에 신규등록상담이라는 기쁨이 더 컸다는 속마음도 살포시 꺼내본다.  길어질 코로나 사태로 멈춰 가라앉은 마음에 희망이 솟는다. 필요한 사람은 찾을 것이고, 변화를 믿어주면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난다는 확신. 힘이 불끈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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