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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22. 2019

딸(안)바보 아빠의 기특한 사랑법

그래. 허락한다. 내가

매우 불편한 말이 있다. 딸바보. 여성을 지지하는 것 같고, 딸아이의 애교와 사랑스러움에 강경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이르는 말, 신조어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아들바보는 없는데 딸바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남아선호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증거가 바로 딸바보라는 어휘의 등장이다. 아들을 귀하게 여기고 아들 낳기를 바라는 문화는 당연하다. 그런데 귀하게 여기지 않던 딸을 균등하게 대하는 것도 선구자적인데 아들보다 낮은 가치로 매겨지는 딸을 높게 받들며 강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 때문에 딸바보라는 어휘가 등장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본다. 처음 들을 때 딸, 여성이 가치를 높이는 듯하나, 그 반대를 의식한 말이라면 그리 유쾌하지 않다.


가벼운 이야기를 위해 너무 무겁고 주관적인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불편한 말이 우리 집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한 떡밥임을 밝힌다.


우리 집에는 딸바보 아빠는 없다. 누구도 누구의 바보가 되지 않는 가풍이다. 아내바보이기를 간절히 원했던 적도 있지만, 고매한 남편의 지조와 절개는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바보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흘러 아이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살이 많이 붙었다. 남편은 내심 아이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내심 그랬다고 추측하는 이유는 단 한 번도 건강에 대한 염려의 말을 하거나 살을 빼는 방법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보, 내가 축구 레슨 끊는다. 그럼 되겠지?


"그럴 거면 등록시켜줘. 이제 당신이 큰애가 도장에 출결을 체크하고 수학학원 빠지려고 하듯 이유를 댈 때 관리해줄 거지?"


"그래,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진짜, 얘랑 잘 맞는 운동이야"




갑자기 주짓수 도장이 새로 생겨 아이랑 가보겠다고 부산을 떤 게 어제였다. 그러고 만 하루 만에 하교하는 아이를 도장으로 데려간 모양이다. 남편이 아이와 관련된 일에 스피드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적극적 자세에 점수를 주었지만 호락호락 동의할 수 없었다. 학원 숙제로 매일 허덕거리는데 하루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운동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그마저 적은 양의 숙제도 다 못하는데 언감 생신 아닌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지만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얼렁뚱땅 동의했다가 한 달치 수강료와 도복 비용까지 날려버릴까 걱정되었다.


한 달 고정비용이 대략 정해져 있어 생활비에서 이리저리 치고 빼도 부담되는 비용이었다. 한 달은 그렇다 치고 도복을 3개월 등록 시 무료로 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3개월치 운동 비용을 갑자기 만들어내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된 난관이 있으니, 공방을 개업한 지 3주 차라 한주가 지나면 다음 달 월세를 내야 한다. 공방에서 수익창출이 불안정하니 한두 달 마이너스를 감안하면 주짓수 비용 지불은 불가했다.





"내가 다 줄일게. 걱정 붙들어 매라. 사랑하는 축구를 안 한다고 하잖아."

"뭔 일인데 이렇게 적극적이지?"

 40줄에 들어서면서 '10대 때 진로지도만 잘 받았다면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는 남편의 축구사랑마저 내려놓게 만드는 지금 상황에 얼떨떨했다.

생활비, 공방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자신의 축구 비용과 용돈으로라도 채워놓을 모양이라 안심이 되었다.

 

"그래, 내가 동의할게." 나의 동의는 결국 등록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딸바보가 절대로 절대로 아닌 남편이 딸바보를 자처한 사건에 웃음이 났다. 아빠 뒤에 서서 엄마의 동의를 간절히 바라는 악력도 쎄고 근육도 상위 몇 프로에 심지어 주먹 왕인 딸아이가  동시에 웃고 있었다. 가정경제는 뒷전으로 딸아이의 건강을 미리 예상하며 기뻐하는 남편도 웃고 있었다. 동시에 웃었으나 다른 의미의 웃음을 각자 쏟아냈다.


혹시 뒤늦게 딸을 운동으로 이끄려는 의도는 아니겠지? 생경한 그의 사랑, 3개월 동안 지켜볼 작정이다.


"여보, 내가 지켜보고 있어."


"딸아 엄마가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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