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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29. 2019

공개수업:두가지 기억

아이의 가벼운 후회, 나의 무거움 해소

학기초 3월! 학부모들에게 3월의 꽃은 바로 학부모 공개수업 행사다. 아이들은 한 주 전부터 선생님의 진두지휘 아래 공개수업을 빈틈없이 준비하느라 긴장한다. 가정에 돌아가 부모님이 공개수업에 오는지 물어보는게 일이다. 워킹맘, 대디는 반차를 내거나 조부모님께 부탁해 자녀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학부모 입장에 굳이 없었으면 좋은데, 아이의 교실모습을 보고도 싶은 '계륵'같은 행사다.


이미 큰아이에게 정성을 다 쏟아본 나로서, 둘째 아이의 공개수업은 관심사 밖의 행사였다. 알림장 확인도 안한지 오래라, 다른 학부모에게 들어도 내 일이 아닌듯 무관심했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와 같은 반 친구에게 공개수업 여부를 듣고 사뭇 놀랐다. "내가 무심해도 너~~ 무 무심했구나" 딸아이에게 미안했다. 공개수업이 진행되는 시간이 나에게는 일하는 시간이고, 다른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그래서 초등1학년 이후 참석하지 못했다. 씩씩한 둘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여서 학기 초마다 마음 졸이다가 쉽게 넘어가곤 했다.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번 공개수업에는 엄마가 꼭 가야겠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서도 애써 꼭 와달라는 소리도 같이 듣고 싶은 두가지 마음이었다. 괜찮다면 시간을 따로 빼지 않아도 되니 수월하고 꼭 와달라면 아직도 아이와 나의 끈이 가깝다는 싸인을 느껴 좋을 듯했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두 가지 말 중 하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괜찮아, 오지 마, 정말이야"

아이의 말에 나는 시원했지만 한편 섭섭했다. 아이의 마음은 내 생각과 달랐다. 엄마가 필요 없다는 표현이 아니라 엄마가 오면 잘하고 싶어 더 주눅 들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기 때문에  오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속에서부터 무거운 마음은 왜일까?  석연찮은 감정의 파고가 높아졌다.


아이는 나의 부재에 감정이 상하지 않는고 누누이 말했고, 절대로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없이 마음이 더 편하다는 말에 대견함과 섭섭함 그리고 열지 않은 어두운 감정을 온통 붙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부터 아이는 어제 미리 꺼내놓은 옷을 입다가 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부터 냈다. 한번 말하면 끝까지 고수하는 성향이 아이다. 그러니 나를 오지 말라고 말린 것을 후회하나 싶어 괜한 눈치를 보았다. 원치 않는 수수한 옷으로 다시 장착하고 나가는 뒷모습이 축 쳐져 보여 오전 내내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학교앞에 서성거리는데 하나의 필름이 겹쳐 지나갔다. 수십 년 전 멋진 옷에 스카프를 매고 큰 화분 하나씩 가져온 엄마들의 뒷자락에서 맡은 강한 향기에 시장에서 청과물을 팔며 손톱 밑이 새까만 엄마가 오버랩 되었다.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아온 적 없던 엄마를 원망하는 생각 때문에 며칠을 끙끙 앓았던 기억이었다. 내 아의 감정은 그리 깊지 않았지만, 내 기억 속 스크래치가 갑자기 건드려져 쓰라렸다. 학교교문앞 건너편에서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오늘 공개수업 잘했어?"

"응, 잘했어"

"엄마, 없어서 괜찮았어?"

"괜찮긴 했는데, 다른 친구들 부모님이 교실에 많이 방문하니까 엄마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너무 강하게 반대해서 엄마가 학교 앞에서 몇 번이나 고민했었어"

"진짜? 어제 괜히 엄마 오지 말라고 해서 후회된다."

"그래 겪어보니 후회할 일이 많긴 하지. 2학기에는 엄마가 꼭 갈게"


"아니, 괜찮아. 마음이 조금 그랬지만 괜찮았어. 공개수업은 괜찮은데,  앞으론 미리 걱정하지말고 엄마 말을  생각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아이는 감정과 달리 씩씩하게 말했다. 혼자 과거에 머물렀나싶어 겸연쩍었다.


몇십 년 전 홀로 엄마를 원망하던 마음을 애써 감추던 나의 통증이 아이의 가벼운 후회와 씩씩한 태도에 봄눈처럼 녹아버렸다. 봄바람에 벚꽃이 예고 없이 훅~하고 피어나 놀라듯 내 마음의 상태에 나도 놀랐다. 내 경험으로 아이를 애처롭게 보려던 억지스러운 생각을 똘똘뭉쳐 구겨 버릴 수 있을 것같았다.


매년 아이의 공개수업을 못 갈 때마다 찰나에 지나가는 아픈 기억이 아이의 후회의 사건과 맞닿아 봄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에 따른 과하게 미안한 감정도 수위가 내려가버렸다.


"네가 고집부리면, 억지로 주장하지 않을 거야. 네가 후회해봐야 알지. 엄마의 소중함도! 흥!"

신기하다. 이제 안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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