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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r 28. 2019

남편!남의편?내편!

테트리스식 사랑

늦은 시간 일을 마무리하고 서류와 처리할 일을 쌓아두고 귀가했다. 부엌에 누가 덜걱거린다. 큰아인가 했더니 남편이 서서 설거지 중이다. 나를 향해 하트 뿅뿅 눈빛은 아니었다. 필시 찔리는 일이 있거나 선전포고 전의 행동 이리라. 무슨 일인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이라 한다.


거실에서 직선으로 보이는 남편의 옆태가 제법 주부스럽다. 한쪽으로 모아둔 재활용 쓰레기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어리둥절하는 나를 보며 딸이 슬며시 나와 웃었다. 뭐지? 생일이 되려면 9개월이 남았다. 머리를 굴리는 모습을 보더니 남편이 웃는다.

가방을 내리며 물었다.

"왜 그래? 다들 무슨 일이야?"

아무렇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


흐트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설거지를 끝내는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남편이 물기를 티 나게 털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여보, 왜, 내가 공방도 운영하니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게 불쌍해 보였어?"

"그래. 좀 안 됐다 싶네"

"진짜?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우리의 건전하고 오그라드는 대화에 아이들은 연신 마음이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주방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큰아이는 아빠의 엄마를 돕는 행동에 새로운 감흥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방 오픈 2주 차,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겨우 인테리어 마무리만 하고 오픈한 터라

운영방식, 수강료, 결제방식, 홍보방법 등을 오픈과 동시에 해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은 누구에게 맡길 없는 고유한 나의 일이었다. 주변 사람 누구도 도울 수 없는 공방 운영의 핵심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소비자의 수요에 맞는 맞춤 강좌를 어떻게 구성할지 해보지 않은 배우자와 지인들은 도와줄 수 없었다. 혼자 뒤꿈치를 들고 오래 서있는 사람처럼 바짝 경직되어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매일 상황을 물어봐주고 미비한 점에 대해 어떻게 극복할지 질문을 해주었다. 그것도 물론 도움이 되긴 했다. 그런데 그것 외에 변한 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잔소리를 몇 번 하면 뚝딱 처리되는 현관 앞 재활용함이 자주 비워지고 있었다. 공방으로 옮길 잡동사니 짐바구니를 스스로 가져다 놓아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내가 늦게 들어오니 나보다 조금 일찍 귀가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종일 공방에 있을 것이 뻔한데도 어디? 밥은? 다양한 내용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밥을 차려 먹지 않던 양반이 저녁상을 차려 먹고 있기도 했다. 물론 라면류이긴 하지만. 이런 변화는 몇 주 동안 조금씩 진화되고 있었다.


작은 아이 수학 숙제가 있으며 평소보다 친절하게 아이를 구슬려 빠른 시간 안에 숙제를 끝내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골라 있게 틀어놓았다.(내가 영화 보며 힐링하라는 목적보다 자기가 보려는 목적이었지만 잠시나마 영상으로 있었다.) 내가 새벽까지 무얼 할까 봐 일찍 자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전에는 일찍 자려는 분위기를 깨는데 선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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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새로운 환경 속에 가족 모두 자신의 역할을 새로 규정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있음을 알았다. 가족회의를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잔소리를 바가지로 쏟아내지도 않았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주방이 멈추고 세탁기가 멈추고 각자 불편해 지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 서로를 돕는 결과를 가져왔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뻔했는데, 우리 집 가족들이 고양이 손보다 백배 나았다.

누구라도 집안일의 빈틈을 발견하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테트리스같이
채워 넣어 주는 것이
사랑인가 보다.
"주의사항"
말없이 자발적으로 채워 넣는 눈치가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없다면
한숨만 쉬지 말고, 정중하고 단호하게
부탁하거나 명령합시다.
아니요, 가족회의를 소집합시다.
가족원 누구 하나 더 무거운 짐을 오래도록 지게 하지는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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