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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13. 2019

과거-미래, 안녕!

시간의 줄타기 위에서


자신을 둘러싼 현재에서 부지불식간 공간이동을 경험한 적 있는가? 모든 사람은 과거로의 이동, 미래로의 이동을 겪는다. 공간이동의 이유는 무엇이며, 이동의 결과인 현재의 부재는 어떤 양상인지, 그렇다면 현재를 누리는 방법은 무엇일지 뻔하게 말해보고 싶다. 


누구나 일 년 전, 몇 년 전, 십여 년 전, 청소년기에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 단 몇 초 만에 과거는 현재가 된다. 이럴 때 주된 감정은 후회나 아쉬움일 때가 많다. 추억을 더듬기보다 부정적 감정에 휩싸일 때 순간이동은 자주 일어난다. 후회와 미련으로 과거 언저리를 서성이다 보면, 지금 여기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즉 자신의 현재를 과거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떨구다가 다시 가로저으며 현재로 돌아온다. 나의 집, 회사, 관계들의 중심에서 정신을 번쩍 차리면 조금 전 곁에 있던 현재는 한참 뒤로 물러가 버린 후다. 지나가버린 현재를 아까워하지 않다가 나중 그 시간을 다시 연민으로 바라보는 반복을 우리는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과거만 회상하며 후회하는 생각도 습관이다. 그런 사람에게 현재는 없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구름 위에 떠있는 듯 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수박 겉핥기로 지나친다. 현재의 미미한 것들에 가치를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그 시점에 본인이, 누군가, 세상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현재의 비루함을 당치 않았을 것이라 여기는 이유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이 무가치해 보인다.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이 낯설거나, 설거지하는 배우자에게 심드렁할 때가 많다. 무기력한 자신을 어리석게 쳐다보지만 답이 없다. 후회의 일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는 체념만 덩그러니 거실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현재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 마음이 없는 관계, 의미를 못 찾는 과업, 불만족한 현실에 푸성귀만 즐비할 것이다.


과거로 자주 넘나드는 사람처럼  미래의 어느 시점, 가공된 나라로 이동하는데도 능력자들도 많다.

이대로 미래는 밝을 것인가?

내 나이 **즘에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기여하는 삶은커녕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할 미래사회에 한 개인이 행복을 누릴 방법은 무엇일까?

내 아이는 제대로 된 직업군에서 자신의 꿈을 성취할 수 있을까?

굶어 죽진 않을까? 건강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인구감소, 노령인구증가로 국력이 약해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미래의 문제를 앞당겨 가져와 걱정에 휩싸인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예측하며 미래라는 나라 시민으로 순간 위치 이동한다. 우리 걱정의 80% 이상은 장래 일어나지 않을 일에 관한 것이라고 밝혀졌고 그 사실을 아는 지성인이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 찾아오는 걱정이라는 손님을 밀쳐낼 재간이 없다.


미래를 위한 걱정으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나중 비극적 결과를 가져올 원인으로 현재의 사건을 바라본다. 그러니 현재 일어나는 일에 불만족 투성이가 된다. 예사로 보이지 않는 사건마다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예측한다. 염려라는 보따리에 무엇인가 자꾸 쟁여넣는다. 사소한 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기우로 바라본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좋은 환경에서도 문제점을 찾는다. 불안정이라는 현재 때문에 얻는 두려움을 해소할 방법이 필요하다.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빼앗기는 삶의 연속은 불안을 해소할 증표들이 필요하다. 점을 보러 간다. 오늘의 운세에 과하게 눈이 간다. 미신적이며 유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창문 앞 작은 잎의 떨어짐에서도 불안이 엄습한다.

우리네 삶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위에 줄타기는 아슬아슬하다. 가운데 현재라는 줄이 상대적으로 얄팍해서 끊어질 것만 같다. 모두가 안고 있는 씁쓸함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나에게 적용하던 사소한 것들, 뻔한 대안이라는 가방에서 주관적 답안지를 꺼내본다.  


심하게 주관적인 답안지 제출!!

1> 인정한다.

과거와 미래가 나의 현재를 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약함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의 약함이 드러날 불안요소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서성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우리를 노리는 눈빛이 곳곳에 있음을 인정한다.


2> 선언한다.

 과거와 미래에게 말해야 한다. 엄습하는 후회와 불안에도 나는 과거와 미래에게 나의 소중한 현재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거울을 보며 되뇌는 것도 좋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선언을 소리로 전달한다. 발화된 소리가 타인에게 전해지고, 소리는 다시 내 귀로 되돌아오면 다시금 재다짐을 할 수 있다. 귀로 듣는 소리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아야 한다.


3> 타인의 지적을 허락한다.

  너무 후회하지 않길, 너무 걱정하지 말길 종용하는 지인들의 말을 달게 듣겠노라 다짐하고, 지인들에게 주기 적로 자신의 순간이동, 위치 이동 상태를 지적질해주십사 부탁한다. 사람은 이렇게 내적 외적 다독임이 있어야 중심을 잃지 않는 존재다.


4> 후회와 반성을 구분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후회는 감정의 쓰레기를 붓는 정서적 행동이다. 오히려 반성은 해석하는 행위다. 감정적 해소에 그 행동의 미진함의 핵심을 발견하고 현재에 재 적용할 바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반성이다. 반성을 위한 위치 이동은 늘 옳다. 그래도 된다. 하지만 후회로만 끝난다면, 단언컨대 아무런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습관일 뿐이다. 반성이 한 번으로 끝이 아니기 때문에 반성 노트를 장만해 기록한다. 아날로그적 노트가 불편하다면 스마트폰에 각종 sns 글쓰기나 메모, 개인 블로그를 활용한다.


5> 염려의 잔가지를 잘라낸다.

  염려의 종류를 빼곡하게 적어본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꺼내본다.  그리고 비슷한 카테고리로 묶는다. 마인드맵을 할 수 있다면 항목별로 걱정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본다. 결국 수많은 걱정의 내용은 몇 가지의 굵은 줄기에서 나온 잔가지다. 몇 가지 굵은 줄기도 주요한 한 가지 기둥에서 출발한다. 그 굵은 기둥 하나를 찾으면 인생의 막힌 문제는 의외로 쉽게 뚫린다. 굵은 기둥 발견, 중간 가지로 정리하면 잔가지는 쳐내기 쉽다. 일어지 않을 일에 대한 잔가지는 쉽게 잘라 수 있다. 걱정의 각다귀만 툭 털어내면 가벼워진다.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일어난다.


(추신)

**후회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없었거나 있었어도 미숙한 결정으로 일을 그르친 경가 많다. 그러나 후회할 만큼 실패했다면 실패할 것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줄어든 것이라 여기면 마음이 편하다. 사람은 평생 실패하고 낙담할 일의 종류만 다를 뿐 누구나 전체 양은 비슷하다. 좌절하지 말자. 나보다 나은 **도 후회하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어떤 것을 놓쳐서 말이다.


**염려가 많은 사람 중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저 태생이 대강 어설프게 맞아 들어가는 것에 유독 불쾌감을 많이 느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의 염려를 격하고 싶다. 다만 염려의 개수가 너무 많다는 것. 그것만 줄어들면 이런 미래를 사는 이들은 꽤 괜찮고 대단한 일을 성취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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