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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25. 2019

글쓰기에서 콘셉트잡기가...

귀인을 기다리는 마음

수많은 책 쓰기 관련 도서에 첫대목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말한다. 그 말에 떠밀려 반년이란 시간을 키보드 앞에 끙끙거리며 살고 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조바심에 토요일 꿀 같은 새벽을 반납하고 공방에 민낯으로 달려왔다 라테 한잔으로 공복을 채우며 나의 '쓰기'를 고찰한다.



먼저,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 앞서 내가 무엇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의 전문영역을 고스란히 남긴다면 인용할 멋진 자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있었던 사례와 의외로 쉬운 원리만 담아도 술술 풀린다. 나의 전문영역을 하나씩 읊어보자면, 방과후에서 아이들의 독서와 글쓰기를 오래 가르쳐왔다. 방과후 현장에서 내가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생각한 것을 담는다면 글이 면발처럼 미끄러지듯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공방을 운영하는 운영자로서의 하루의 기록을 적어보는 것, 포텐이라고는 터지지 않는 반복적이며 소소한 일상다반사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 건져야 한다는 부담으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반짝이는 것을 찾는 시선으로 매일을 기록한다면 이것 또한 들기름 한 숟갈 목구멍에 쓰윽 넘어가듯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상 속 주부 18년을 통과하는 주부로의 기록은 리얼 버라이어티 수준으로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중2라는 터널을 지나가는 딸아이와의 폭풍 같은 갈등이나 화해의 이야기는 조미료가 필요 없는 꿀 소재가 될 것이다. 자료조사나 인터뷰, 설문 결과를 찾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나의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영역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누가 읽을 것인가?


다음은, 독자가 읽고 싶은 주제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시류에 맞는 영역이 아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발가락 때만큼 받기도 어려울 수 있다. 경제서도 아니며 자기 계발서도 아닌 영역을 다루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물론 교육서, 자녀양육서 관련 글이라면 탄탄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지만, 내가 기록할 이야기는 교육 전문 이론서라기보다 교육에서도 사교육 영역에 한정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여기서 전략이 필요하다. 비 인기 영역이라도 내가 매번 하는 일을 기록해 읽고 싶도록 콘셉트를 잘 잡으면 된다. 읽고 싶도록......, 콘셉트를......, 콘! 셉! 트!...... 갑자기 가슴 한쪽이 막막해진다. 콘셉트를 못 잡으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닌가. 반년을 하루에 한편 이상 무엇이든 썼다. 그런데도 헤맨다. 나에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혜안을 던져줄 귀인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많은 강의를 듣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아도 그 말이 그 말 같았다. 당최 나에게 적용할 수 없으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니거나, 내 길은 맞지만 길가 돌멩이들 위로 간신히 걸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보잘것없는 기분에 귀인 탓을 하기도 하는 유치함이 가끔 혼자 있을 때 올라오니 헛웃음이 난다.


가사와 워킹을 병행하는 여성으로 전략의 한가운데를 꿰지 못하는 한계. 책을 쓰고 싶고 뭐라도 쓰고 있는 변방 글쟁이의 한숨이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골목의 적막을 채우고 있다. 나는 계속 걸어가야 하나. 꾸준하게 쓰기만 하면 길가를 헤매더라고 진일보하는 것 아닐까?


고소 라테 한 모금과 시나몬 빵은 상큼하게 입안을 채운다. 적막이 깨진다.

 '뭐든 쓰라'. 읽던 책 다음 장을 넘기니 툭 튀어 오르는 챕터 제목.

서글퍼지려는 토요일, 공방의 적막을 뚫고 귀인이 나타났다.

귀인의 말씀을 듣는다.  

콘셉트를 모르면 어떠하리, 뭐든 쓰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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