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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03. 2019

똥꼬보다 힘이 좋은 글쓰기?

글 변비쟁이들을 위하여

십여 년 이상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명곡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변비의 '변'을 말하기 부끄러워할 어른에게도 자유를 주는 노래다. 꽉 막힌 것이 뚫리는 감흥과 함께 터부시 하는 것들이 유쾌의 소재로 가벼워진다.


"내 똥꼬는 힘이 좋아
암만 봐도 힘이 좋아
내 똥꼬를 거쳐갔던
똥들에게 물어봐봐

긴똥, 짧은 똥, 두꺼운 똥, 얇은 똥
......"




여기에 보태 말하면, 인상 찌푸릴 각종 똥의 종류가 모두 언급된다 해도 과하지 않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과 함께 부정적 아이콘이 통쾌하게 쏟아진다. 이 노래대로라면, 똥꼬의 힘 덕분에 꽉 막힌 어떤 똥도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아, 이런 놀라운 쾌변 감(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을 선물하는 노래를 나만 알 수 없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를 가만히 비틀어 본다.


치유하는 글쓰기, 발설하는 글쓰기를 통해 새사람이 되었다는 작가들이 많다. 그들은 어떻게 (똥꼬의 힘이 쾌변 감을 주는 것보다 더) 속 시원한 글쓰기를 경험했을까?


글 변비 현상을 겪는 이들에게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



이 막힌다. 잘 쓰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필휘지로 멋들어진 글을 창조해내리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했다. 좋은 소재를 만나 원 없이 논지를 펼치고 싶다가도 몇 줄 시작한 문장은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은 의도로 방금 쏟아낸 말들이 돌아본다. 어쭙잖거나 어색하다. 비루하거나 낯이 붉어진다. 견딜 수 없는 어색함을 깨고 다시 지우고 쓴다. 한참 달렸는데 두 문단을 넘지 못한다. 완벽하지 못해도 봐줄 만은 해야지 않는가. 이렇게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해 불만족에 커피 한잔을 태우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결국 머릿속이 텅 비어있다. 나중에 다시 이 글을 써보리라 파일함에 저장한다.


이 자주 막힌다. 그 이유는 널리고 널렸다. 그중 하나는 마땅한 낱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이다. 아는 낱말을 쓰려니 너무 고만고만하고 유사어를 찾아보니 마땅찮고, 학식을 드러낼 낱말은 평범한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고와 실력과 이상이 삼자대면해서 팽팽하게 시간을 끌어 지친다. 다음 문장으로 나아갈 수 없다. 다독과 정독을 넘나들며 낱말 수집에 게을렀던 탓이라 자책해본다. 글을 쓰면서 어휘라는 턱에 자주 걸리게 되면 글 쓰는 흥미를 잃기 쉽다. 제 풀에 지치는 것이다.  


이 막혔다가 겨우 뚫려도 문제다. 글을 쓰다 보니 처음 말하려던 방향과 어긋나게 달리고 있다. 이것은 글의 일관성 문제다. 영감이 임하면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 싶어 운동화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뛴다. 지리산을 간다고 출발해서 동네 앞산에 당도한 것 같다. 글의 구성이 지도와 같은데 덮어놓고 달린 것에 순간 자괴감이 든다. 글을 시작할 때 말하려던 결론을 마무리할 때까지 팽팽하게 잡아야 하는데 생각의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다. 시작과 다른 결론. 어긋난 채 덮어놓고 달리면 배나 힘든 줄 모르고 쓰기만 하면 좋은 줄 안다.


에서 어긋난 부분을 거꾸로 다시 쓴다고 상쾌함을 찾지 못할 수 있다. 글의 구성, 멋들어진 설계도대로 쓰지 않은 글은 결국 설득력을 잃는다. 지인들에게 읽힌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내가 읽어도 뻔하거나 지루하거나 화가 난다. 이게 아닌데. 그래서 글을 고친다. 처음 구성대로 아예 갈아엎고 써야 하는데, 쓴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새롭게 도달한 결론을 살려볼 참으로 고친다.

   영감을 받아 썼던 서두를 결론과 맞추려니 사실과 다르거나 비약이 생긴다. 맥이 풀린 글은 길을 잃은 눈빛으로 구조 요청한다. 단추를 끝부터 어긋나게 잠그는 고집을 왜 부리고 있을까. 모두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넣는다. 처음 영감이 무엇인지도 희미해져 글 쓸 동기가 사라지겠다. 덜컥 겁이나 라면을 끓이고 생각한다. 다시 쓰려니 만정이 떨어져 책상에 멀직히 앉아 티브이만 쳐다본다.


꽉 막힌 글 변비 증상에 답안 또한 널렸다. 작가들마다 일맥상통하거나 전혀 다른 답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힘이다. 변비쟁이가 자신의 똥꼬의 힘을 믿고 괄약근 여러 부위에 힘을 주다가 쾌변을 경험하듯 글쓰기도 그렇다. 선배들의 혜안을 빌어 습작하되 스스로 용을 써 봐야 자기만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상쾌함을 느껴봐야 글쓰기 막힘 현상은 줄어든다.

 

요즘 글 변비에 가끔 멈춰있다. 3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 번. 매일 한편 이상 완료한 글을 게재했었다. 낯이 붉어질 실력일지라도 훠이 훠이 생각을 연기처럼 멀리 흩어버리고 썼다. 그런데 매너리즘과는 다른 어떤 지점에 도달했다. 막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있다. 글쓰기가 막히는 현상이 어찌 보면 반갑다. 성장의 장벽 앞에 실제로 서게 된 것이라 자축해 본다. 나만의 길을 찾을 기회다. 앗싸!!! 이럴 때 노래를 부른다.

"내 똥꼬는 힘이 좋아, 암만 봐도 힘이 좋아......"


글 변비 쟁이로 오래 머물고 있는 엇비슷작가님들에게 이 곡을 추천하고 싶다.


이제 펜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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