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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05. 2019

모두 돌아간 풍경

풍요롭고 가득한

 마지막 수업을 마친 아이까지 인사하고 돌아가는 저녁

혼자가 되어도 가득 채워지는 밤을 끄적인다.

조 명 하나를 켜고 빛으로 채우면 

공간은 부스스 흩어진 머리를 질끈 묶은 아이의

붉은 볼처럼 동그래진다.

아이들의 신청곡에 오후 햇살이 묻어 흐르다가

알맹이만 쏙 빠진 사탕 봉지가 구석을 기웃거린다.


가장 대견하고 뿌듯한 감정을 조금 이상한 것에서 느낀다.

지우개 똥이라 불리는 가루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두리번거리는 지우개 똥이 많은 날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웃음 짓는다.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구나'라고


이르게 달려온 폭염으로 정수리까지 따끈해진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 메고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온다 

체온이 식고 여러 잔의 물과 사탕 몇 알로 

한 시간 책 속에 빠져 헤매다가 

"이제 가야 해요"라고 일어난다. 


조금 밝아진 아이들의 얼굴. 그 어깨가 더 가벼워졌기를 기도한다.

아이들이 돌아가면 텅 비어도

빛이 어둠을 물러가게 하듯

남아있는 체취, 소곤소곤거리던 목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의 조각들이

책장 사이 전등 아래 묻어있어

어둡지 않다. 가득하다.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늦은 시간까지 

나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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