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고 가득한
혼자가 되어도 가득 채워지는 밤을 끄적인다.
조 명 하나를 켜고 빛으로 채우면
공간은 부스스 흩어진 머리를 질끈 묶은 아이의
붉은 볼처럼 동그래진다.
아이들의 신청곡에 오후 햇살이 묻어 흐르다가
알맹이만 쏙 빠진 사탕 봉지가 구석을 기웃거린다.
가장 대견하고 뿌듯한 감정을 조금 이상한 것에서 느낀다.
지우개 똥이라 불리는 가루들.
책상 위에 어지럽게 두리번거리는 지우개 똥이 많은 날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웃음 짓는다.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구나'라고
이르게 달려온 폭염으로 정수리까지 따끈해진 아이들은
무거운 가방 메고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온다
체온이 식고 여러 잔의 물과 사탕 몇 알로
한 시간 책 속에 빠져 헤매다가
"이제 가야 해요"라고 일어난다.
조금 밝아진 아이들의 얼굴. 그 어깨가 더 가벼워졌기를 기도한다.
아이들이 돌아가면 텅 비어도
빛이 어둠을 물러가게 하듯
남아있는 체취, 소곤소곤거리던 목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의 조각들이
책장 사이 전등 아래 묻어있어
어둡지 않다. 가득하다.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늦은 시간까지
나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