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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06. 2020

눈높이 낮춘 '이태리식 고로케'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방식

공방 옆에 빈 상가가 있었다. 원래는 카페였었고 뒤를 이은 떡볶이 카페도 1년을 못 버텼다고 한다. 흉물스럽게 찢어진 마트 전단지와 바닥에 소복하게 쌓인 3 금융대출 명함들로 지날 때마다 거슬렸다. 아이들은 문이 닫혀 으스스하기까지 한 상가를 '망한 가게'라고 칭하며 지나갔다. 월세를 지불하며 가게를 닫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점주의 휘었을 허리가 떠오르곤 했다.


어느 날 뚝딱거리며 간판이 교체되고 가게 내부에 있던 낡은 소품들이 100리터 쓰레기 봉지에 담겨 나왔다. 쫓겨난 사람들처럼 이전 카페 로고가 새겨진 그릇이 처량하게 길가에 포개져 있었다. 가게는 내부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 파스타 가게로 오픈했다. 동네 아이들은 뭐가 들어와도 망할 것이라는 말을 하며 지나갔고 이 사실을 모르는 사장님은 누구라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얼굴도장을 찍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상기한 얼굴에 순수한 말투가 파스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중심 주거지 아파트는 멀고 단지 끝에 학교가 있다. 교문 맞은편 일렬로 줄지은 상가에는 학원만 가득하다. 가벼운 분식류나 문구점, 떡집 외에 간식을 살 곳이 없다. 그런데 파스타는 가족중심으로 찾아야 할 음식점이라 학교 앞과 어울리지 않았다. 파스타를 간식류로 팔기도 어색하니 가게의 앞날을 난데없는 필자가 걱정하게 되었다.  오픈 빨도 눈에 띄지 않았다. 네 개의 화환이 한 달 가까이 가게 앞에 서 있었지만 테이블은 가득 차지 않았다. 자영업 점포 하나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기가 편치 않았다. 나도 사장님과 같은 입장이지 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자 사장님은 배달의 민족 입간판을 설치했다. 치느님이야 주문배달이 당연하지만 파스타는 전문점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배달용 오토바이가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나의 어쭙잖은 걱정이었나 싶어 조심스레 물어보니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 얼굴에 웃음기는 여전한 것을 보니 사장님의 내공이 장난이 아닌 듯했다. 괜한 걱정을 했다며 슬며시 공방으로 돌아왔다.


배민과 콜라보 전략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장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순둥순둥 하게 생겼는데 트렌드를 읽는 매의 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자 배울 점을 찾고 싶었다. 가게 안에는 카카오페이로 선불하도록 큐알코드를 두어서 고객의 편리를 더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변화를 주는 세심함이 눈에 들어왔다. 개업하던 날 '이 동네는 아이들을 잡아야 해요'라고 말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노련한 달인 사장님 앞에서 별소리를 다 한 것이었다.


상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파스타 가게를 지나야 한다. 여느 때처럼 지나가다가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에 초등 남아의 글씨체로 보이는 홍보글이 보였다. "이탈리아식 고로케 1개 1000원". 생각지도 못한 메뉴를 내놓은 것이다. 학교 앞에 주전부리는 분식집, 문구점에 과자, 사탕류, 떡집에 초등용 포장 떡이 전부다. 그런데 어떤 품목과도 겹치지 않으면서 누구나 좋아할 메뉴를 내놓았으니 지나가다 놀랄 수밖에. 


그냥 고로케는 식어도, 얼어도 맛있다며 즐기는 나인데 이태리식이라는 구절이 매혹적이었다. 올리브에서 막 짜낸 최상급 기름으로 상큼한 향이 날 것만 같아 얼른 주문했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 쓴 손글씨로는 맛을 예측할 수 없었다. 종이컵을 가득 채운 비주얼, 숟가락과 함께 나온 동그란 고로께는 사랑스러움이 케첩과 함께 묻어있었다. 겉바속촉에 눈이 동그래졌다. 함께 먹던 딸은 엄지 척을 쌍으로 백만 번 날렸다. 쭉쭉 늘어나는 치즈의 풍미와 고고한 살결을 가진 볶음밥은 고소함의 최고봉이었다. 이런 걸 1000원에 판다고?

아이들의 입맛을 잡는 고로케 전략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맛을 보면 일단 반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면 미안할 정도기 때문이다. 사장님에게 가격을 너무 낮다고 민원을 넣었다. 비싸다는 민원은 들어봤지만 노고에 비해 가격이 낮다는 민원이라니. 그 민원을 옆에서 지켜본 내가 넣은 것이다. 고로케를 동그랗게 치대는 데만도 5분 이상 걸렸다. "아이들이 건강한 음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서 만들어봤어요." 사장님은 실제 배민으로 팔리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고로케를 판매했다. 웃으며 인사를 잘하는 수더분함에 저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라니. 아무리 전략이라지만 수지가 맞지 않는 전략이 감동적이었다. 수고보다 낮은 가격이 걱정스러웠지만 먹어본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끌고 다시 찾아오고 있다고 하니 다행 중 다행이다.

나도 트렌드를 읽는 사장님에게 붙어가고 싶어 졌다. 배민과만 콜라보처럼 공방과의 협약을 넌지시 내비쳤다. 아이들의 수업태도에 따른 달란트 적립을 고로케와 맞교환하는 전략. 사장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파스타 가게가 고로케로 흥하게 되면 글공방 아이들도 고로케를 먹고 싶어 더 열심히 읽고 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닌가?


올해는 파스타 사장님의 아이들을 사로잡는 전략을 똑같이 흉내 내 볼 생각이다. 사장님의 다음 전략을 기대한다. 붙어가고 따라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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