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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24. 2020

정녕, 보증금에서 월세를 까야합니까?

일개 공방 주인에게 찾아온 귀한 손님

1년 전 자영업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요즘같은 시국에 주부로써 애를 돌보며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었겠지. 자영업자들이 무너진다는 소리는 자주 듣던 이야기라 귀 기울이지 않았겠지. 경제가 어렵고 내수시장이 죽는다는 말 또한 오래된 라디오에서 나오는 천편일률적 소식이라 그냥 넘기며 웃었겠지.


지금 나에게 현실은 웃을 일이 아니다. 결코 웃어서는 안 될 기막힌 상황이다. 이렇게 한두 달 가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한다. 나도 문제거니와 옆에 나란히 어깨동무한 가게는 한달전 가게를 인수해서 일을 배우고 있었고 가게 하나더는 12월에 음식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동네에 멀쩡하던 가게들이 왜 문을 닫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수시장의 둔화가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19의 전염성으로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 오늘은 지난주부터 지속된 학원전체 임시휴업으로 그 학원과 함께 상생하던 작은 상가들이 다 문을 닫았다. 개학도 한주 연기되어 깔깔거리며 넘어질듯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편의점이 운영을 하고 있어 그나마 덜 외로울 정도다. 스산한 겨울의 막바지에 코로나 19를 마주 대하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에 어떤 답이 있을까.


집에 있는 것보다 공방에 출근하는 편이 낫다. 쓰던 글도 마무리하고 혼자 코로나 사태 종식 후 꾸려갈 새 학기를 바라보며 구상도 하느라 딸들에게 어려운 미션을 던져주고 나왔다. 나의 오른손 보조가방에는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공방에서 뭐하세요? 왜 아이들도 안 오는데 공방에 나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공방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이면서 또한 혼자만의 작업장이기 때문에 매일 머물고 있다. 동네가 인적이 드물어졌다해도 나의 작업은 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차량도 거의 보기 어려운 상황, 공방 앞을 공연히 텅 빈 버스만 25분 단위로 지나간다. 그마저 반가울 만큼 종일 적막하다.


그래도 이맘때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고 문구점, 분식점, 떡집, 블럭방 등 종소리가 짤랑짤랑거렸었다. 아이들의 출입에 맞춘 경쾌한 알림음이 이제는 사라진 것만같다. 허전하고 서늘한 기운이 오전부터 종일 어깨를 눌러 무겁다 느낄 때, 문득 고개를 들었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시간이 그만큼 지난 줄 모르고 있다가 훌쩍 저무는 오후 햇살.  볕이 산을 넘어가며 마지막 사력을 다해 파이팅을 보내온다. 햇살, 그것 참 밝은 소리를 가졌다. 온기를 끌어모은 볕이, 스탠드 불만 종일 켜놓아 음습해진 실내를 따듯하게 채운다. 볕을 더 보려 문쪽을 보니 무심하게 걸어놓은 니트가디건위로 눈부신 빛이 어깨를 토닥여주고 있다. 조금 더 역동적인 일을 하겠노라 팔을 걷었다. 볕의 힘 때문인지 의욕이 잠시 솟았다.

조립중 대형 책장도 쓰다듬는 볕이 좋은걸요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어 사방이 빼곡하게 책이 가득하다. 혼자 못하겠다고 미룬 조립 책장을 언박싱했다.  혼자 할 수 있겠다며 드릴이 아닌 드라이버를 꺼냈다. 사소한 일인데 못한다고 밀쳐둔 이유가 우울감 때문이었을까? 조립가구는 혼자서 만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800이 넘는 외다리 한쪽을 붙들면 다른 한쪽이 주저앉고 그걸 붙들면 모두 쓰러져버린다. 손쓸 겨를 없이 난감해지면 만들기를 그쳐버렸었다. 그런데 오늘 평소와 달리 책장의 구성품들이 스스로 직각의 힘을 잃지 않고 내 앞에 서있다. 꼿꼿하게 나사를 조이길 기다리는 것만 같다. 고맙다. 서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사람만이 아니었구나. 숨죽이고 서서 견디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리고 공방 옆에 나란히 장사하다 오늘부터 문을 닫은 사장님들 같아 안쓰러웠다.

책장을 조립하는 동안 햇살은 더 머물지 못하겠노라 마지막 눈부심을 안겨준다. 골목 담벼락 뒤로 사라지는 아이처럼 손인사를 한다. 다음 주도 휴업이다. 그다음 주도 예측할 수 없다. 임시휴업이라는 안내 종이가 펄럭인다. 휴업이란 말이 생계비와 월세를 어떻게 마련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 조속히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다.


아이들은 집 밖으로 출입을 못해 싫어하던 학교며 어린이집을 보내달라 떼를 쓴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들은 가끔 애써야 나오던 메뉴를 총동원해 아이들의 삼시 세 끼를 차려내느라 오랜만에 이마에 땀을 흘리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마주하는 현실이며 이웃집에도 벌어지는 하루 일상이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지나가던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다. 요정이 내가 허락하기도 전 뾰로롱 마술봉을 흔들어 시간에게 명령한 듯 멈춘 도시, 사람들, 일상을 모두 멍하기만 하다.

햇살아 너라도 찾아주니 이토록 반가운 것을. 곳곳에 숨어있을지 모를 바이러스를 찾아가 주겠니. 너에게 존재한다는 살균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다.


 각계각층, 전 국민의 각고의 노력으로 예상치 못하게 멈춘 요정의 시간 마법이 풀릴 그때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동화적으로 썰을 풀었다고 탓하지 않겠지예~? 대구 경북은 마, 마, 마 많이 힘들다 아입니꺼..이래라도 밝게 마음먹어 보는거라예~알지예? 대구경북 응원해 줄 거지예~~?)


추가로, 전국에 영업을 중단한 사장님들, 월 수익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암담해진 자영업 종사자 모든 분들에게 함께 힘을 내며 버텨보자고 두 손 높이 들어 응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자영업자들의 월세 감면 및 생계비 지원을 위한 방안을 추진해달라고 소심하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저도 대한민국의 자영업자입니다. 건물주에게 월세에 대한 의논을 해야 할 상황인데 과연 가능할까요?

"없으면 보증금에서 뺄게요" 이렇게 답하시진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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