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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07. 2019

퇴사 후 창업, 유혹될 만 하나요?

내 맘대로 출근하는 기쁨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붙이고 티브이를 보다가 출근해도 된다. 1시가 수업이기 때문이다. 공방은 집에서 근거리에 있다. 걸어 5분, 차로 1분이면 도착한다. 처음 출근시간을 10시로 정하고 맞춰 나갔다. 하루는 일찍 출근했더니 9시가 안된 시간에 방문하는 분이 계신 후로 출근시간을 당겼다.


8시 반이면 어김없이 공방에 불을 켜고 환기를 하며 청소에 몰두한다. 가끔은 쌓인 먼지 냄새가 좋아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놀다가 후다닥 청소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공기의 드나듬의 생동감을 느끼는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어 이른 출근과 동시에 문과 창을 모두 연다. 하루를 깨끗이 준비하는 청소의 묘미.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인증샷, 칼발이 아님을 만천하에 공개합니다.

하루는 작은 아이 때문에 오전 7시 55분에 나섰더니 공방에 8시에 도착했다. 나의 하루가 더 길어졌다. 청소를 다 하고도 등교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타박타박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른 시간 만나는 활기에 하루 종일 흥이 났다. 이제 9시보다 더 이른 오전 8시 밑 화장만 하고 출근한다.


일인창업, 혼자 운영하는 공방인지라, 세수도 않고 출근해 코브라 수전이 달린 세면대에 우아하게 머리를 감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대박이 따로 없다. 민낯이라고 흘깃 쳐다보는 이도 없다.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좋다. 심지어 차로 1분 거리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출근해서 옷을 갈아입으며 누군가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혼자라는 공기의 묵직한 밀도와 가라앉은 고요함을 깨는 방문자가 없다. 8시 30분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고 1학년이 하교하는 1시 이전까지 개미 한 마리도 다니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끝자락 산아래 학교가 있고 그 앞에 공방이 있다. 오전에 택배차량과 간혹 지나가는 버스 정도를 목격할 뿐이다. 유동차량이 없으니 울창한 뒷산 수풀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도시의 적막, 마을의 고요를 누리다가 때론 영화처럼 시간이 멈추었나 덜컥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러면 휘파람을 부는 척 공방 입구 유리문을 하릴없이 열고 닫는다. 반가운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문 안으로 달려오면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인다. 빈 차도와 인도를 수없이 사진으로 찍었다. 무인도에 있는 기분이라 묘한 감정에 쌓인다.


적막과 고요함의 중심을 누리며 월세만 면하자는 목표를 달성하는 나를 칭찬하고 있다. 섬에 혼자 들어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길 바라던 마음에 작업실 겸 공방을 열었다. 정말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조용한 공간을 위해 무인도로 떠날 필요가 없다. 멈춘 듯 흐름을 알 수 없는 시간에 스스로 갇혀 실실 웃고 있다. (이런 이상적 환경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 독서며 작문에 집중할 수 없는 반전은 다음으로 넘기기로 한다.)


월요병, 화요병, 수요, 목요, 금요일의 아침은 직장인들에게 늘 새롭게 힘들다. 마치 죄수가 끌려가듯 다리를 끌며 현관을 나서는 출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나는 성공한 것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방식이 거짓 위무일지라도, 나는 좋다.


자율 출근으로 시간의 압박이 없어 좋고 이른 출근으로 하루를 채워서 좋다. 바람소리 딱따구리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으니 한량이 따로 없다. 목표를 높게 잡지만 않으면 매일 행복이다. 이윤이 적어도 '나'라는 브랜드가 구축되니 보람을 느낀다. 이 정도라면 자영업의 무덤인 요즘에 창업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단, 생계형 창업일 경우는 월세만 면하자는 목표와 달리 고수익이라는 목표를 잡아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


지금까지 고수익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실안주형 소심 목표 쟁이 공방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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