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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11. 2019

쑥절편이 필요할 때!

절편에게 절하고 싶은 풍성한 오후

날이 좋~다.

날이 매우 좋고 주문했던 식물이 노련하게 포장되어 도착했다.

홀리 페페는 소분해서 미니화분에 옮겨 심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될 때 속이 시원하다. 가까운 분식집 막내아들이 "샘, 나도 우주 최강으로 잘해요"라며 상가 뒤 흙을 퍼다 날라주었다. 식물을 심기에 물 빠짐이 안 좋은 흙이라 화분에 넣지는 못했지만 땀을 흘리며 세 번을 뜀박질하는 아이가 고마웠다.


흐트러진 공방 바닥을 쓸고 닦을때 옆 상가 수학 원장님이 떡집으로 들어가다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급히 화장실을 다녀온 후 떡집으로 들어갔던 원장님이 지나가며 까만 봉지를 건네주었다. 떡집에서 커피를 사면서 내 것이라 떡을 산 것이다.(학교 앞 신세대 떡집은 커피도 같이 팔아요) 조용히 내민 손이 부끄럽지 않게 뛰어나가 받아 들었다.

떡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떡이든 오케이 하겠지만 나는 떡 취향이 단호하다. 여간해서 아무 떡이 나 먹지 않는다. 오직 절편. 햅쌀로 빚어 반질반질 윤이나는 새하얀 절편과 씹으면 쑥의 섬유질이 씹히는 초록의 쑥절편을 사랑한다.


원장님이 어떤 떡을 사 왔을까 까만 봉지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정성껏 사준 떡을 취향에 맞지 않다고 안 먹으면 그것만큼 미안할 수 없다. 그래서 제발 절편이길 바라면서 봉지를 조심조심 여는 순간. 앗싸~절편이다. 게다가 초록이 진해 쑥을 많이 넣은 진정성 있는 쑥절편이다. 씹을 때 쭈욱 늘어지는 게 서양의 치즈와 비길 수없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 할머니가 마실 갔다 돌아올 때 손에 들고 온 절편을 가로채어 대청마루 끝에 궁둥이만 걸치고 앉아 먹었다. 새카만 손으로 하나 뚜욱 떼어 입에 넣으면, 씹을 때 쫄깃한 질감, 찰진 소리와 아랫니   윗니 사이에 끼어 짝짝 소리가 나던 절편. 오래 씹으며 엄마의 그림자를 기다렸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절편을 씹을 땐 이상하게 옛날이 함께 그려진다.


나의 유난히 가리는 떡 취향을 어찌 옆에 상가 원장님이 알았을까? 내심 오늘 같은 우연을 주신 조물주에 감사하고 싶다. 떡 하나 오물거리면서 난데없이 조물주까지 소환하나 싶어 피식 웃는다. 감사와 행복이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가능하다 싶어서다. 까만 봉지 안에 절편이 가져온 감사를 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본다.

글을 쓰면서 먹고있다. 한 입 베어물면, 캬~

나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가슴을 훈훈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잊고 나에게 함몰되지 않았을까?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에 불쾌지수가 올라가려던 일주일을 꺼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살펴본다. 지금 나는 누구에게 감사의 전달자가 되어줄까? 퍼뜩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니 나라는 우물에 오래 있었나 보다.


아니다, 조금 전 다녀간 분식집 아들에게 해주었던 칭찬 한 바가지로 그 아이 얼굴에 빛이 난 사건이 쑥절편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사람은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오후 햇살의 뜨거움이 가라앉고 있다.


오늘 유난이 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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