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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21. 2019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노랑머리 남학생의 반전//

어제의 노랑머리 남학생은 오늘 약속한 시간 2분 전에 도착했다. 외부강의를 마치고 늦었는데 입구에서 아이와 마주쳤다. 아이는 어제와 닮은꼴로 부산스럽지 않았다. 물 흐르듯 사뿐히 자전거에서 내려 자물쇠를 걸었다. 자물쇠를 걸지 않는 동네아이들과 조금 다른 행동이었다. 아이는 올곧음과 질서 정연함이 몸에 배에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신중하고 원칙적이며 사물의 본질을 고민하는 성향이 맞겠네'


아이는 어제보다 조금 더 밝아진 얼굴로 공방에 제법 익숙해진 듯 들어왔다. 자신의 사물함에서 파일을 꺼내고 어제 읽던 책을 꺼냈다. 동생이 방해하지 않고 엄마가 없는 이곳을 사랑하게 된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아이는 두 번째 출석에도 어색함 없이 익숙하게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공방 문을 열면서 어디에 자리 잡을지 이미 정한 듯 다음 동선을 밟았다. 햇살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널따란 테이블 앞이 오늘의 자리였다.


낯 기온이 한여름 기온처럼 높아진 실내공기에 숨이 막혀, 소강의실로 이동하라고 했다. "싫으면 네가 정한 자리에 그대로 있어도 돼" 나는 아이가 신중하고 진지한 기질일 것이라 여겨 난데없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이는 순순히 강의실로 옮겨 책을 펼쳤다.


시간이 흘렀다. 오후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남은 햇살이 아까워 강의실 밖으로 다시 나오겠냐고 의사를 물었다.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의 권유는 저를 위한 것이지만 귀찮고 목적 없는 이동에 짜증이 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순순히 자리를 옮겼고 움직임이 사뿐했다.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이 의외였다.


아이는 한참 지난 후 한마디 했다. "오늘 애들이 왜 없어요?"

"아차, 당 충전! 일단 사탕부터 먹자. 오늘은 수업이 없어. 다른 학생들은 안 오는 날이야. 어때 조용하고 좋지?"

아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신중하고 느리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아이라면 적막에 가까운 고요에 혼자 에너지를 얻을 텐데 썩 달가워하지 않아 보였다.


오후가 기울때 즘  허기질까 인절미를 조금 주었다. 얼추 책을 다 읽었길래 워크 지를 줬다. 아이가 글씨를 쓸 때 햇살 한 꼬집씩 시원하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인절미의 쫄깃함이 이미 퍼진 사탕 향과 합해져 혀에 퍼지는지 아이는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워크지를 채웠다.


나는 궁금하면 돌직구로 묻기를 좋아한다. 돌려하며 서로를 살피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던 옛날이 싫어 돌직구 화법을 선택했다. 물론 신중한 사람에겐 아주 조심스럽게 돌직구를 날린다. 아이 성향에 대한 예상이 적중했으리라 굳게 믿으며 말을 건넸다.


 "**야, 너는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할 때 거기 있으면 기운이 나니, 아니면 집에 돌아가 네 방에서 조용히 혼자 생각하거나 쉴 때 기운이 나?"

"음,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요"

"진짜? 그런 곳에 있을 때 사람을 살피는 게 힘들지 않아? 왜, 피곤하잖아."

"아뇨..."

아이는 나의 질문에 아주 선명한 대답을 했다. 글쎄요~라거나 한참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답을 했다.


속았다. 아이가 나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 나의 꾀에 내가 넘어간 것이다. 처음 만나는 선생님, 처음 발디딘 공간에 익숙해지느라 자신의 본래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를 미처 잘못 판단했던 것이다.


학생이든 성인이든 학부모를 만나면 성향부터 파악한다. 행동유형별 기질검사에 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주도적으로 목표를 향하는 성향, 사교적이고 반짝이며 주목받기를 즐기는 성향, 관계의 평화를 추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평화주의자, 매사에 신중하고 비판적이어서 본질이 무엇인지 의심하는 성향이 있다. (관련 내용은 이미 전문서적으로 출간이 많이 된 것으로 안다. 참고하시길) 나는 기질검사, 대인관계 강의를 다니며 관련 내용을 많이 다루어 성향 파악이 빠른 축에 속한다.


나의 경험, 빠른 예측과 높았던 적중률을 믿고 학생을 섣불리 파악한 것이다. 아이가 신중하니까 쓸데없는 농담이나 아재 개그를 최대한 자제했다. 노랑머리 남학생에 대한 플랜을 진지 모드, 가치와 본질 추구, 철학 쪽으로 잡으려고 했다.


일찍 물어보길 잘했다. 아이는 사교적이고 사람을 좋아하고 싹싹한 타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첫 만남에서 아이에게 던지려던 시답잖은 개그와 무리수 유머를 풀기 시작했다. 말을 걸 때도 너무 진지하게 하지 않았다. 툭툭 던지듯 말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웃으며 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어제의 경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권하려던 책 목록을 다시 조정하고 있다. 아이의 독서습관 교정에 좋은 흥이 나는 도서가 뭐가 있을지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 **야, 두 번 만에 너를 조금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헛다리 짚을 뻔했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단다. 너를 반대 성향으로 파악했구나. 네가 싫어할 방향으로 코칭할 뻔했으니, 이제부턴 유쾌하게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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