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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22. 2019

 안경을 벗어야 잘 보인다.

장단점의 정의는 어떻게 내리나

장단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점이 장이 되고 단이 될까? 장점과 단점은 스스로 정하는 것일까? 타인이 정해줄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러하다면 타인의 기준에서 정해진 장단점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타인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을까? 장단점이란 세음절 때문에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도입 활동으로 자신의 장점 10가지 적기를 했다. 연필을 사각 거리며 출발한 아이가 있고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도 쓰지 못한 아이도 있다. 그 중간 정도 속도를 내는 아이들은 질문이 많았다. 아이들의 경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먼저는 장점을 많이 적는 아이들을 살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잘하는 영역이 많은 아이들은 줄기차게 적었다. 10개는 기본이었다. 상을 많이 받아보거나 학원에서 대회경험이 많은 아이들은 적을 것이 많았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나는 뭐든 잘해. 난 1등이야. 뭘 하든 상을 받는다고"과 같은  자신감을 갖고 있어 장점 적기는 식은 죽 먹기같아보였다. 


"선생님, 장점이 잘하는 것인가요?"

"장점을 적을 때 다른 친구가 비교해서 잘하는 것도 물론 맞지만 그런 게 아니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이 대견하고 좋아하고 잘 참는 무엇도 장점이 된단다. 생각해보면 정말 많아"


그런데 내가 준 기준을 유심히 듣고 뜸을 들이다 적는 아이들도 있었다. 눈을 사선으로 천정을 향해 들고 생각하며 적었다. 부모님이 자신을 칭찬했던 일을 생각하고 스스로 잘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몇 개의 질문은 더했다.  


"선생님, 느리게 뛰는 건 장점인가요?"

"생각해보자. 느리게 달려 1등 하지 않을 테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느리게 달리는 장점보다 포기하지 않는 장점으로 적을 수 있겠네"


나의 말을 듣더니 나머지 아이들도 감을 잡았는지 활동지에 코를 박고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안도감에 즐거워했다. 중간 속도의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쓰던걸 자꾸 지웠다. 적었던 장점에 자신이 없어지면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다가 더잘하는 누군가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애들아, 똥을 잘 싸는 건 장점일까?"

"에잇, 더러워. 쌤 똥은 단점이죠"

"그럼, 변비도 안 걸려본 듯하니 상상해봐. 일주일째 똥을 못 누고 있어 그럼 배도 아파요. 병원 가서 약을 넣어 관장을 해요. 아니면 *꼬도 찢어져요. 피나요. 아파요. 죽을 수도~"

"윽"

"샘, 그만그만요"

.

.

.

"똥을 잘 싸는 건 장점일까 단점일까"

나의 집요한 질문에 아이들은 일시에 대답했다.

"장점요"


"얘들아, 비교하지 않으면 장점은 셀 수 없이 많단다. 이제 다시 누구랑 비교하지 않는 스스로 대견한 장점을 다 적어봐"


쓰다 지우다 반복하던 아이들이 다시 연필을 그러쥐고 사각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생각이 와장창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제법 진지해진 분위기와 침묵 속에 아이들은 친구들과 상관없는 자기의 고유한 장점을 몇 개씩 더 찾게 되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똥을 잘 싼다는 것을 몰래 적었다.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자신의 장점을 찾도록 했지만, 정작 나는 장점을 '남과 비교없이' 적어본 적이 없었다. 내게 별처럼 빛날 장점이 얼마나 많을까. 연필을 꺼내기 전인데 벌써 대견해지기 시작한다. 공책 한 권 다 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비교라는 안경을 쓰고 살다가
어느새 서툰 어른이 되었다

흠집투성이 안경을 벗고 다시 보면
아주 반짝이는 새 사람이
있을 거라고

 비교의 안경은 벗으면
더 잘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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