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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l 13. 2019

뻔한 아이 글, 부활 전략

아이의 글, 심장이 뛰도록

수업을 다 마쳐갈 때쯤 "지금까지 자신이 발표한 것, 친구에게 들은 말을 글로 적으세요." 아이들은 방황의 눈빛을 보냈고 달랑 한두 줄로 끝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뻔하디 뻔할 아이들의 글을 들춰보았다.


말한 것을 글로 남기는 것이 뭐 어렵겠냐지만 어렵다. 어른도 말할 때는 흥에 겨워하지만 정작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옮길 때 얼굴이 하얗게 질리지 않던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가르침의 중요한 팁이 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내가 지시하는 말대로 먼저 실행 가능성을 따져보면 아이들의 난감함에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왜 뭉그적거리거나 모르쇠만 반복하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내가 내준 미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을 하라고 했는지.


자신이 말로 십여 문장을 발표한 아이가 그 내용을 그대로 글로 쓰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자신이 그 많은 말을 하고도 새하얗게 잊어버린다. 새하얀 종이만 들이밀면 말이다.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말과 글은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말은 아무렇잖게 할 수 있고 글은 뭔가 바르고 거창해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의 생각을 조금 바꾸어 주면 쓰기는 부활할 수 있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생각을 선악으로 재지 않고 그대로 쓰면 된다. 그렇게 쓴 글이 더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어색한 부분을 스스로 찾으면 지우개로 지우기 시작한다. 일단은 적어야 어색함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적을 내용이 머릿속에서 달아나버리니 난감 그 자체의 상태가 된다.


아이가 말로 발표한 때는 구체적인 자신의 친구 이야기 사돈의 팔촌까지 소환해서 예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글로 옮기라고 하니 젊잖은 선비가 되어서 속된 말을 다 정제해버렸다.  "스마트폰을 정해진 시간에 시청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아야 합니다."라고 썼다. 지금껏 발표한 다양한 생각은 다 사라져 버렸다.


어른이 좋아하는 말, 뻔한 말, 고상하고 올바른 교과서에서 건져 올린 말을 옮겨놓는다. 다시 되물었다.

"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친구의 글이 좋더니, 커서 뭐할지 벌써 걱정이고 대학교도 못 간다는 엄마 말이 맞다는 친구의 글이 좋으니?"

아이는 당연히 뒤에 문장을 선택했다. 현실을 말하는 솔직함에 눈이 더 가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을 때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가 흥이 난다. 쓰는 이는 자신의 말이어서 쉽다. 읽는 이는 친구들의 실제 행동이 그려지니 웃긴다. 그런데 수업 시 80프로 이상의 아이들의 글은 마지막이 똑같다. 토가 나올 정도로 교과서를 옮겨놓은 듯하고 천편일률적이다. 인물전을 읽으면 모든 아이들이' ~처럼 열심히 살아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싶다'라고 쓴다. 이건 뭐 30년 전 이런 문장이 먹혔던 부모님들의 가정교육 탓인지, 아니면 선생님들이 세밀하게 살피지 않은 탓인지 알 수가 없다. 내 아이도 이렇게 썼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들의 똑같은 답안을 보면서 어른들이 써내는 자기소개서에 시골 출신이며 건실한 부모님 슬하에서 밝게 자라 반장을 역임하며 아이들을 이끌었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는 아주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ok'사인을 기다렸고 나는 '다시'라는 사인을 주었다.

 "선생님도 스마트폰으로 노는 게 제일 재미있는데 너는 재미가 없니" 물었다. 아이는 폰 이야기만 들어도 수업 직전까지 하던 게임을 생각하는 양 입꼬리가 승천했다.

"너도 웃네. 그리 좋은 걸 줄일 수 있긴 해?" "어떤 결심과 어떤 계획으로 시청시간을 정할지 방법은 있어?"

"스마트폰 대신 친구들과 사이좋게 논다는데 친구가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이는 나의 연속된 거꾸로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와 폰 없이 신나게 놀아봤니? 어떻게 놀면 더 재미있을까?" 아이는 나의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정답이 없어. 그냥 솔직하게 써봐. 진짜 네 속마음 말이지. 수업 중에 네가 했던 솔직한 생각들 말이야"

많은 아이들이 글을 영혼 없이 쓴다.
자기 생각이 일도 들어가지 않은 티가 팍팍 난다.
이런 쓰기를 도대체 어디서 주워 담아 외우고 있었을까?
한 두 명이 아니다. 집단최면 증후군에 걸린 건 아닐까.

구체적 사건을 자세히 적는 비결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영혼 탈출 글은 소생한다.
읽을 만한 글로 부활한다.
감칠맛이 더해진다.

똑같은 생각, 똑같은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말을 자세히 글로 옮기고  변한 글을 읽는 순간 아이들의 눈에 빛이 난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나쁜 생각이나 불편한 감정을 적어도 되는구나. 너무 얼토당토않은 방법이라 혼날 줄 알았는데 신선하다는 말도 듣는구나'
아이는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표정을 짓는다

이제 다음 단계를 알려줄 때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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