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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2. 2019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계속 미쳐있을 작정인데,

아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엄마를 괴물처럼 쳐다보는데 왜 그럴까? 내 입에서 툭 튀어나간 말 때문이었다. 곧이곧대로인 아이는 가르쳐준 대로 실천하는 성향다. 융통성보다는 원리원칙에 가깝다. 그 아이가 5세를 막 넘겨 6세가 될 시점에 나와 많이 부딪쳤다. 왜냐하면 내가 가르치지 않은 일은 멍하게 쳐다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답답한 통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내가 급한 줄도 모르고.


그런 아이에게 몹쓸 말을 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동생이 태어나고 두 아이를 키우려니 나도 벅찼다. 다 컸으니(둘째를 낳으면 첫아이는 다 큰 아이처럼 느껴지는 비밀을 경험자는 공감할 터) 빨리 자신의 처신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능그적 거리던 아이를 방에 들여보내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아이고 미치겠다'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아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참고로 아이의 별명중 하나가 소머즈(먼 거리에서도 다 들을 수 있는 미국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이었을~)였다.


"엄마, 다 들었어"

"뭘?"

"엄마, 나쁜 말했지? 아빠한테 이를 거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쏟아낸 말을 기억하지 못해 아이를 나무랐다.

"엄마가 무슨 나쁜 말을 했다고 그래? 내가 언제 그랬어? 너는 무슨 소릴 듣고 그러는 거니?"

"그거 욕 맞잖아. 다 알아"

황당한 눈빛으로 나의 결백을 내비치며 그런 적 없노라 했다.

몇 분간의 공방이 있었다.

"욕이라고? 진짜 엄마가 무슨 말 했는지 들은 대로 말해봐. 엄마가 기억이 안 나. 나쁜 말이 뭔데?"

"'미'자로 시작하는 말이잖아."

 내 기억을 더듬었다.

"아, 미*? 아까 엄마가 생각 없이 한 말 말이지? 그걸 듣고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그건 힘들다는 말이잖아. 모든 미친, 미치겠~이런 말이 욕은 아니야. 남을 향해하면 완전 욕이지만 힘들어 미치겠다. 배고파 미치겠다라고도 쓰여. 사실 너무 심하게 힘들거나 그 정도가 심하면 쓰기도 하지."

"엄마가 다른 친구들 그 말하는 거 욕이라고 쓰지 말랬잖아. 그러니까 욕이지. 다른 말이라도 나는 듣기 싫어"

"그래, 엄마가 네가 싫어하는 말, 비슷한 소리라도 내지 않을게"


십여 년 전 사건이다. 오늘 글과 연관성이 미진하나 꼭 글에 실어보고 싶던 에피소드라 용기를 냈다. 아이가 오해한 소리값 "미친"과 달리 오늘 말하려는 '미치다'는 과하게 몰두한 사람의 상태를 말한다. 절대로 남을 향한 비난하는 비속어가 아니다. 이 말이 요즘의 나를 적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 어릴 적 이야기는 억지스러울지도.


미쳐야 무엇이라도 이룬다는 말은 자기 계발에 주로 등장하는 단골 문장이다. 한 분야에 몰입하고 시간과 물질을 할애해야 전문가가 된다. 인내로 몰입할 때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사물과 현상을 설명할 재주 정도는 갖추게 된다.


뜻이 맞는 사람 여럿이 모여 식사 준비를 했다. 나는 청소를 하겠다고 동참했고 이미 발 빠른 분의 청소로 공간은 말끔했다. 나는 역할 이 사라져 다시 공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책을 읽던 수업 준비를 하던, 보강계획을 짜든 할 일이 많았다. 주방을 살더니 나의 퇴장이 불가해 보였다. 칼질을 기다리는 식자재가 많았다. 조금만 도와주면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칼을 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화려한 짬뽕국물. 와우, 군침이 돌았다. 평범한 지인이 만들어낼 국물의 수준이 궁금해졌다. 날씨도 후덥지근해 칼칼한 것이 당기니 하나의 목표가 더 생겼다.


이럴 때가 문제다. 최선과 차선, 일차적 목표와 더불어 추가된 목표 사이에서의 갈등. 그 상태에서 칼질을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경과하고 알았다. 짬뽕국물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한 가지를 썰면 다음 재료가 나왔다. 물론 나의 짬뽕에 대한 열망으로 견디며 콧노래를 불렀다. 빨리 마치게 되면 어서 돌아가리란 목표에 손놀림이 빨라지다 보니 어깨가 뻐근했졌다. 나는 할 일이 태산인데 괜한 후회와 함께 국물 맛을 그리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복잡해졌다. 남겨둔 일이 휙휙 지나갔다. 하루 두 꼭지 글을 쓰리라 목표한 것도 휴가에서 복귀 후 어불성설. 내 일이 밀렸다. 그런데 주방도 일이 밀렸다. 이렇게 둘 다 처리하고 싶은 게 문제다.


두 가지 지연된 과업에 속이 답답한 찰나, 버블 밀크티로 떨어진 당을 충전했다. 다시 속도를 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마음이 편하겠지만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는 급하고 중요한 일 사람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급하지 않고  덜 중요한 나의 업무에 관한 것이다. 내 일을 위해 사람을 미루지 못해 끝까지 주방을 지켰다. 일반 주부가 만들어낸 짬뽕국물의 깊이와 풍미에 밥 반공기을 뚝딱했다. 잘 참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밥 반공기에 국물을 얹어 먹는데 다된 밥에 코 풀게 생겼다.


지인들보다 반박자 빨리 먹었다. 무슨 위대한 글쟁이라고 급하게 그랬는지. 빨리 귀가한들 얼마나 빨라질 시간이라고. 반박자 느리게 먹고 사람을 얻을 것을. 나의 에 대한 열정에 과몰입하는 게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다. 늘 이런 식이다. 하반기 출간을 앞두고 원고 마감을 해야 하니 더 복잡하다. 좋아하는 일이 똬리를 틀고 머릿속을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지인들이야 이해한다. 도움의 손길에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나의 이런 과몰입의 상태가 장기화될 것인데 지인들을 제쳐두고라도 사춘기 아이에게는 미리 말해둬야겠다. 궁금하지도 않을 아이에게.


"얘야, 엄마가 그런 미치다가 아닌 이런 미친 상태로 계속 갈 건데 괜찮지? 이젠 네가 듣기 싫다, 보기 싫다 해도 계속 이럴 수밖에 없어. 얘, 듣고는 있는 거니?"

그  미친이 아니라 이런 미친은  좀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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