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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09. 2019

김훈-느리게 읽기

라면을 끓이며

일주일에 한두 번 작가의 산문집을 펼쳐 한 두 꼭지를 읽는다. 일부러 많이 읽지 않는다. 사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오래 멈추게 만드는 글이라는 사실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결코 가볍지 않은 문장에 매번 매달리게 된다. 매 꼭지마다 다양한 것에 놀란다. 생과 사에 대해 논하는 이번 꼭지는 작가의 딸에 대한 이야기라 더 솔깃했다.


자신의 딸이 공부를 마치고 첫 월급을 받아와 핸드폰을 사주고 용돈을 준 사건을 언급할 때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나도 안도하는 숨을 쉬었다. 공감이 밀려왔다. 자신을 몰아세운 밥벌이의 지겨움과 거룩함이 딸에게도 이어진다는 발견에서 나는 멈췄다.


"그 아이는 나처럼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했고 부모가 그렇게 지나간 길, 사람이 산다는 진부하고 평이한 삶의 일상성을 작가는 경건하다고 말한다. 행복이나 기쁨의 다이내믹이 없어도 거듭되는 순환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힘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무료함이 무가치함이라는 어긋난 해석으로 기울 때 이런 문장을 만난다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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