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Aug 14. 2019

어디 숨었다 왔어? 작가님

꼬마 작가들을 만나다

약속시간이 지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출근 후라 아침에 언질을 주었다고 했다. 다시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얼마 후 공방 문을 살포시 열었다. 눈이 큼직하고 키가 크며 마른 체형이었다. 앙다문 입술에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공방을 등록했다. 그녀는 글쓰기를 좋아하며 혼자 습작을 해왔다고 한다. 사뭇 진지하고 모든 질문에 허투루 대답하지 않았다. 때론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팔과 다리를 달달 떨었다. 수업을 마치며 알았다. 떤 게 아니라, 낱말을 찾을 때 습관인 것을. 스승님 앞에서 너무 긴장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러웠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를 설명하는 글을  쓰라고 했다. 진지하게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완성된 글을 낭독하라고 하니 차분한 어조로 무게감 있게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후 셀프평가를 하게 했다. 자신의 글의 구멍을 스스로 느꼈다. 호흡이 막히는 부분을 잘 찾았다. 그녀는 모든 면에 스마트했다.


*그녀의 꿈이 궁금했다. 프로그래머가 꿈이라고 했다. 스크레치와 코딩을 접하면서 흥미가 생겼단다. 그런데 글에서는 그녀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이야기는 길어졌다. 자연스레 꿈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그녀의 꿈이 선명해져야 공방에 다니는 목표가 뚜렷해지고 글쓰기 수업의 방향이 잡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은 좋아 보이는 일이고 소설을 쓰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도 프로그램 쪽 진로를 좋아하셨단다. 그녀는 꿈의 아이디어를 타인에게서 받은 것이다. 꿈이 ~인 줄 알았는데 ~로 다시 바뀌었다고 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열망을 솔직하게 직면한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절친이 쓴 글을 평가를 해주면 글을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설가가 꿈이고 그녀의 친구는 문학평론가가 꿈이라니. 이럴 수가!


그녀의 나이는 올해로 13세. 초등 6학년이다. 그녀의 친구도 물론 동갑이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초학교 6학년이 꿈을 고민하며 친구와 글을 읽고 합평하는 놀이를 하고 있다니. 물론 그 누구에게도 교육받지 않은 자연인의 상태로 찾아낸 놀이라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영업이 아니니 그 친구와 손을 잡고 와보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영업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강조하긴 했다.

중학교를 갓 입학하고 같은 반 친구 중 키가 훌쩍 크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친구와 단짝이 되었다. 그녀의 취미는 세계명작 읽기였다. 나는 갈매의 꿈이나 죄와 벌 같은 제목을 그 친구를 통해 처음 들었다. 친구와 비슷해지고 싶었고 그녀의 고상함을 동경했다. 나도 동네 서점에 자주 들러 손바닥만 한 단행본을 사기 시작했다. 우리의 아침 등교는 자신이 읽었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그 길을 그런 친구와 계속 걸었더라면 20년 이상을 돌아오진 않았을 텐데.
고3, 나의 꿈을 진로를 묻는 분에게  말했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어른의 웃음이 너무 커서 당혹감과 모멸감까지 느꼈다. 어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 가능한 말이었다. 정신 차려라, 비현실적이다, 굶어 죽기 딱 좋다, 돈벌이가 안된다, 뜬구름 잡고 있네, 교대를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은 어떻냐?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급 피로해졌다. 남들 보기에 허무맹랑한 꿈에 너무 오래 머문 게 초라해 보였다. 얼른 부끄러운 꿈을 접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허무맹랑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현실 직업군에 머물다가 20년이 훌쩍 더 지나 다시 돌아왔다. 물론 지금은 현실 직업에 머물며 글을 쓴다. 어쩌다 시인이라는 명찰을 달았고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그래서 한 달을 1년처럼 쓰자는 굳은 결의가 느슨해지지 않는 중이다.


절대로 절대로 어른들의 말씀을 반만 들으라고 조언했다.(그녀의 부모님께 동의를 구한 조언이라는 점.) 그녀의 꿈이 문학의 길이 아니라면 다른 조언을 했을 것이다. 어려운 글쟁이의 길임을 알아도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찾는 꿈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라고. 하늘이 주신 글 쓰고 싶은 욕망은 결국 언젠가 튀어나오게 마련이니까. 어차피 해야 할 거면 지금부터 쭉 하라는 마음, 나처럼 돌아가지 말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말했다. 내가 과감한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한 것이라 믿는다.


어린 그녀는 벌써부터 복받은겨!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온 나를 만난 것, 글쓰기를 밀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글을 쓰고 싶은 너의 열망.
나도 계속 복 받고 있는 겨! 때 묻지 않는 꼬마작가를 만난 것, 헤매던 경험을 전해줄 수 있는 것, 그녀의 첫 번째 독자가 될 수 있는 것.


어색하게 들어서던 그녀가 발랄한 모습으로 귀가했다. 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아이가 너무 행복해하더라고. 도대체 뭘 가르쳐 준거냐고 물어오셨다.


"어머니,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대화를 했어요. 그것만으로 소망이 생기거든요"

"안 그래도, 학교에서는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운다길래 궁금했거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씀요, 저와 따님은 지치지 않겠지만, 중학교 진학하고도 어머니 마음 흔들리지만 마세요. 따님은 응원만 해주면 길을 찾아갈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응원한다, 꼬마 작가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