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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6. 2019

언니네 극한여행-(울산)대왕암

돌풍으로 최악, 하나되어 최고

오늘 겪은 여행기, 따끈할 때 기록한다. 느슨한 무계획 휴가를 이주전에 마치고 일주일 복귀를 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공방 공식 방학은 끝이 났지만 하나 둘 아이들 휴가로 보강에 보강이 이어졌다.그러려니 스케줄을 몇번이나 조정하기를 여러번. 그렇게 며칠 더보내고 8월15일이라니, 아주 반가웠다. 가족들 각자 원하는 휴가를 보냈으니, 가족원 모두 함께할 이벤트가 필요했다. 2시간 안에 당도할 수 있는 울산의 대왕암, 2년전 가본 기억을 더듬으며 출발했다.


김밥과 에어프라이기에 돌린 치킨과 음료를 진열하고 분위기를 더 내기 위해 편의점에서 각자 원하는 음료와 디저트를 샀다. 오늘따라 다들 귀찮아하지 않아 설레는 기분은 차안을 가득 채웠다. 문제는 하늘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맑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비소식이 없던 대구와 달리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어두워졌다.


먹구름이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시야가 가려질 만큼 뿌옇게 사방을 덮어버렸다. 와이퍼를 아무리 돌려도 차창밖은 뿌연 안개속같았다. 그런 와중에 차 안은 뒤에 두 아이의 의견차이로 언성이 올라가고 앞자리도 다른 주제로 사뭇 목소리가 커졌다. 오랜만에 여행인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쏟아지는 비에 갑분싸가 무슨 말인지.


싸늘하게 식은 차량내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비는 차창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전 비가 그치겠다라는 희망어린 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대로 가자, 돌아가자, 집에서 치킨에 라면에 티비를 보자는 말이 오갔다. 출발한 이상 못먹어도 고! 속으로 대왕암이 무사하시길 바랐다. 2년전 대왕암에서 당한 김치싸다구를 능가하는 칼바람의 따귀를 아직도 기억한다. 설마 그보다 심하기야 하겠는가.

대왕암 근처, 하늘과 땅을 뿌연 수분이 안개처럼 채워져있었다. 혹간 특정 지역은 하늘에서 물기둥이 몇 보이기까지 했다. 대왕암은 어땠을까?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주차한 차량이 별로 없었다. 행선지를 바꿀지 잠시 민했다. 어른신 몇분이 우비를 장착하고 걸어나오시길래 비옷을 샀다. 이정도면 우산없어도 끄덕 없겠다 생각했다.

입구까진 무난했다. 인적이 드물는 것 뿐, 바다를 마주보는 공원에는 키큰 나무들이 우람하게 서있다. 그 옆을 지나가면 신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가 옛날 전설의 고향의 주인공이 튀쳐 나올 것도 같다. 사람 수를 셀수 있을 만큼 조용할 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닷가 대왕암구경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해수욕을 했는지 머리카락은 산발이고 젖어있었다. 날씨가 쨍하지 않은데도 해수욕을 할 정도로 해변이 좋을지 궁금졌다.

기암절벽을 이루다가 구비구비 대왕바위들이 똬리를 틀며 서로 엉켜있었다. 멀리서 보고 그 입구 다리를 들어서려는 순간 날아갈뻔했다. 바람이 때리는 따귀에 일회용 비옷이 휙하니 벗겨질뻔했다. 우산은 펼수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왜 그나마 몇몇 셀수 있던 사람의 발길이 대왕암 바위 시작지점에 하나도 보이지 않는지, 그리고 우산대가 부러져 버려진 것이 곳곳에 있는 이유를.

사람이 없어 적막했지만 바다의 장엄한 포효에 압도되었다. 이미 일회용 비옷은 모자부터 벗겨지고, 비옷밖으로 나온 옷은 다 젖었으며, 우산은 부러지기 일보직전 접었다. 돌풍에 휘돌아 따리는 비를 피하겠다는 작은 시도가 하찮은 방법일 뿐. 끝까지 바위들의 뒤틀림과 얽힘의 끝자락에 닿고 싶었다. 바람의 저항이 심해 계단 하나한 오르느라 다리에 힘을 많이줘 후들후들거렸다. 바다와 맞닿고 육지와 멀어진 지점, 바위의 끝에 도달했다. 나는 거기서 내가 만난 가장 쎈 바람을 만났다. 들고있던 폰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설렘의 출발, 먹구름, 작은 다툼, 경미한 각자의 소음, 출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 계속된 부정적 분위기의 마감이 대왕암의 최악의 비바람으로 마감되게 생겼다. 아이들이 다시는 여기 오지말자고 말할까 안색을 살폈다. 옷이 다 젖어 짜증을 내고 어서 돌아가자고, 여벌옷이 없으니 어쩌냐고 나를 탓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남편의 웃음,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비바람에 허우적 대는 서로 동영상 찍어주겠다고 머리를 맡대는 아이들. '최악인데최악이 아니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오는길의 갑분싸는 더이상 우리 가족에게 묻어있지 않았다. 바람에 다 날려가버린 것같았다.

성향이 다르고 터울이 멀어 별로 대화가 없던 두 아이가 서로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고 잡아주는 모습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사춘기를 달리는 큰아이와 데면데면하던 남편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아이를 달려와 안아주며 안내해주는 모습. 남편이 속이 뻥 뚫리는지 이미 다 젖은 몸이지만 달려드는 빗줄기를 향해 팔을 뻗으며 바람을 즐기는 모습이 고마웠다.

남편 뒷모습 지못미

최악의 여행이 최고의 추억여행이 되었다. 도착하고 도망치듯 돌아가는 몇몇 팀을 다 보낼때까지 우리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우리에게 평생 이야기꺼리를 선물한 대왕암. 대왕암에 불어온 메이저급 비바람이 너무 고마웠다. 최악이 될 뻔하다가 너때문에 살았다. 고맙다. 오랜만에 가성비 갑인 여행을 한 것같아 젖은 옷이었지만 마음은 따듯했다. 차 안에서 급한 옷을 온풍에 말리기를 30분, 소고나 구워먹으러 가자!!로 여행을 마무리 했다. 돌아오는 길? 비는 더 억수같이 왔고, 귀가길 고속도로 빗길 사고를 눈앞에 확인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최악의 환경이 꼭 최악만은 아닐수도.

돌아나오는데 잠시 비가 줄고 수국은 웃고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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