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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03. 2019

'안녕'을 소유했나요?

어제 태풍으로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습도가 높아 불쾌하단 이유로 화면을 보는 것도 싫고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정이 뚝 떨어졌다. 손끝도 움직이기 싫다면서도 징징대며 브런치 글 하나를 발행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징징 거림이었다.


오늘 아침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고요했다. 그런데 눈이 붙어버렸다. 비몽사몽이었고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두덩이가 부었다. 열이 나고 목에 가래가 끓어 기침이 심해졌다. 올 것이 왔다. 봄여름 아프지 않고 잘 지나간다 했더니 그분이 오고야 말았다. 편도가 부었고 기관지가 좋지 않았다. 병원은 공휴일이라 문을 여는 곳이 없었다. 없다기보다 병원을 가기 싫었다. 만사가 귀찮은데 문을 연 병원이 없다는 핑계로 뒹굴거리고 싶었다.


큰아이가 만들어준 토스트를 먹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기절했다가 라면 냄새에 눈을 떴다. 큰애가 라면을 끓여 작은애와 먹고 있었다. 얼큰한 라면을 먹고 싶었다. 아이의 봉양을 받아 라면 한 그릇을 먹었다. 속이 안 좋아졌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잠들었다 깨니 오후 3시 반이 되었다. 평생 가장 긴 수면이었다.


최근, 나이를 생각해서 12시 이전 취침. 새벽 기상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지키지 못하고 12시 이후 취침, 새벽 기상으로 한 달 이상 버텼던 것이 화근이 된 것 같았다. 잠이 부족했나 보다. 오늘 모자란 잠을 다 잔 것 같았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작은아이를 친구네 태워주고 공방에 들어섰다. 구피는 인기척을 느껴 밥을 달라고 바글거렸다. 식물들은 어색하게 줄기를 아래로 향하며 힘이 없었다. 적막이 빽빽하게 무르익어 숨이 막혔다. 화면을 켰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글쓰기의 두번째 위기를 만났다. 올 초 글쓰기의 1차 위기를 넘기고 정기적 글을 발행해야 쓸 것같아 브런치에 입성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나 두번째 위기앞에 도착했나보다.


죄 없는 친구를 소환해 그녀의 시간을 몹쓸 수다로 채워주었다. 미안했지만 친구는 친구라 흔쾌히 나의 치근덕대는 것을 받아주었다. 어른 인체 했지만 친구 앞에서는 어리광도 수용되니 고마웠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글도 쓰기 싫고, 일도 하기 싫고, 책도 읽기 싫다는 나의 말에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그녀처럼 잘 그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기준을 갖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았다. 낙서라도 하고 싶었다. 아무렇게나 삐뚤게 그려보자고 마음먹고 목표물을 찾았다.



사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일개 다*소에서 1000원에 3개 한 묶음인 마스킹 테이프가 말했다. "안녕". 미미한 테이프 하나가 건네는 기적 같은 소리가 들렸다. (공방에 있으면 이렇게 마법에 걸린 듯 동심으로 돌아간다.) "안녕"이란다. 나더러 쪼깬한 사물이 나의 안녕을 어왔다.


나는 무엇으로 안녕하는가?

안녕이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안녕은 과연 누구의 기준이란 말인가?

나는 어떻게 안녕해왔던가?

나는 지금 안녕한가?

안녕하지 않다면 어떻게 안녕할까?

꼭 안녕해야만 하는가?

많은 질문이 동시다발로 달려들었다.


"저리 가!" 마테가 단순하게 물은 "안녕"에 쓸데없는 상념 나부랭이가 붙지 말라고 엄하게 말했다.(살짝 무섭네요. 혼잣말 내공이 상당한데, 저는 이상 없답니다.) 나는 나를 다독였다. 상념이 필요할 때와 잘라버릴 때가 있다. 오늘은 잘라버릴 때였다. 어떠한 상태든 괜찮아. 피곤할 수 있어. 실수할 수 있고, 미래가 안 보일 수 있으며 부당한 것들로 아플 수 있지. 지금은 쉬는 타이밍이니 물러섰거라. 잡생각들아. 그래, 안녕하지 않으면 어때? 안녕하지 않다가 안녕하게 되는 법이지. 오늘은 안녕하지 않을래.


그러면서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녕"을 소유한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그리고 이 글을 혹시나 여기까지 읽으실 독자분들에게도 묻고 싶어 졌다.



당신은 그 무엇도, 누구도 흔들지 못할 "안녕"을 소유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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