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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09. 2019

엄마도 저기저기 제발 가봐.

나를 다듬어 주는 아이의 말!

아이가 아기 입맛을 벗어났음을 알려준 독립선언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이유식 이후 먹성이 유달리 좋아졌다. 깨작거리는 거라곤 근처도 안 가고 자신의 반찬을 손으로 가려 사수하던 아이였다. 아이는 선명한 입맛의 소유자였다. 백만 스물두 가지 맛 정도는 사뿐히 구별할 정도의 미각과 후각을 가졌다는 것도 어떤 사건 이후 알게 되었다. 내가 요리를 잘해서 잘 먹은 게 아니었다. 맛은 없지만 잘 견뎠던 것이었다. 아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해 했던 말이 있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아이는 학교 급식이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싱거운 맛보다는 더 진한 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급식이 얼마나 싱거운지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음식은 간이 안된 음식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맞다. 나는 나트륨 혐오자였다. 아이가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소아당뇨나 심장질환이 걸리기 쉬울 거라 지레 겁을 먹었다. 아기 때 짜게 먹으면 평생 그 입맛이 기준이 되어 염분 섭취 과다로 성인병에 걸린다는 정보를 주로 신뢰했었다.


초등학교에 몇 달 다니며 행동반경이 넓어진 아이는 동네를 엄마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파트, 그 앞에 소아과, 길 건너 대형마트가 다인 줄 알았던  아이는 언제 관찰을 했었던지 소아과가 위치한 건물에 함께 입점된 여러 기관이나 업체를 꿰게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동할 목표를 알게 되면 용감해진다. 놀이터도 혼자 나가서 자전거로 동네를 투어를 하는 모습에 다 키웠다는 착각을 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과 급식 이야기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엄마의 요리를 평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번도 겪지 못하던 일이라 "그냥 먹어"라고 말은 하고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너무 비슷한 메뉴의 사이클을 돌렸다 싶어 메뉴의 변화도 주었다.

마트를 다녀오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 저기 좀 가봐"라고 말했다. 거기가 어디인지 묻고 답하기에 우리는 너무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양쪽에 들고 있었다. 아이도 정확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두 손에 들고 있던 우유며 과자봉지를 어찌하지 못하고 "엄마도 저기 가보면 어때"라는 말만 반복했다.

11층인 집에 도착했다. 장바구니를 정리하고 한 숨 돌리고 '저기'가 어디인지 물었다. 아이는 나더러 아파트 입구 소아과 옆 건물에 있는 어떤 곳을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곳엔 맨 꼭대기만 영업하고 나머지 2개의 층은 텅 비어 있었다.

"혹시 **요리연구협회를 말한 거니?"

"응, 요리학원은 아닌데 뭔가 더 제대로인 것 같아서"

"엄마가 거기 왜 가야 하는데?"

아이는 그걸 물어봐야 하냐는 듯 나를 올려다봤다.

"엄마, 제발 정신을 차려. 엄마는 스파게티 같은 건 잘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한국음식은 못하는 거 같아서, 저런데 가면 가르쳐주지 않을까?"


얼굴이 붉어졌다. 결혼 전 친정부모님이 바쁘셔서 가사를 도와주는 이모님이 오셨다. 나는 손에 물을 묻히지 않다가 결혼을 했고 남편의 학업으로 3년 동안 주말부부를 했다. 그러니 내 손에는 계속 물을 묻히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처음 접하는 이유식을 하면서 울면서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식자재 고유의 맛에 반하기도 했다. 배운 적 없는 요리 실력치고 잘 해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의도치 않게 돌직구를 던진 사건 이후, 뭐든 잘 먹는 아이 덕에 요리 솜씨가 괜찮다 여기던 나만의 착각을 접었다. 다양한 한식 나물무침과 비빔밥과 찌개 등을 시도하면서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된장찌개를 끓이면 된장국이 되고 콩나물무침을 할 때 가끔 질겨지기도 하지만 한식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이의 직언 때문이었다. 어때 한식연구소 안 가도 되겠지?

몇 년이 지났을까, 요즘 아이의 날카로운 입맛 덕에 밥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요리하는 반찬은 작은 아이가 주로 먹는다. 큰 아이는 자기 스스로 2박 3일 삼시 세 끼를 차려먹을 수 있을 경지에 올랐다. 엄마의 솜씨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그 경지를 찾아 연구하는 자세가 대견해 보인다. 엄마 밥상을 참고 견뎌준 너의 십여 년의 세월에 감사한다. 우리 집 든든한 기둥, 첫째야. 둘째도 독립 선언하는 그날이 서둘러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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