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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14. 2019

반짝이는 가을, 반짝이는 너의 그릇.

중2 취향의 재발견.

청명하다. 가을, 소리 내어 부르면 반짝이며 달려와 해사하게 웃는 가을.

이 계절에 가장 빛나는 것은 하늘이다. 일전의 글에 가을을 반납하겠다던 마음이 흔들렸다. 높고 푸른 하늘이 시원한 주말에 하늘을 계속 올려다봤다.


근처 동네에 아나바다가 열렸다. 레트로에 빠진 큰애와 함께 해거름 즈음 장소에 도착했다. 첫 번째 내 눈을 사로잡은 아이템은 니트류 였다. 1시간 후면 마감이라고 옷을 정리하던 주인장과 눈이 마주쳤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을 뒤적거렸다. 작년에 고이 걸려있던 걸려있던 흔적과 낡은 꽃향기가 났다. 마음에 든다는 눈빛을 숨기고 옷을 몇 개 들어 보였다. 주인의 흔쾌한 흥정에 오지도 않은 겨울이 주머니에 두둑해진 기분이었다.


많은 품목이 눈에 띄었지만 더 지체했다가 아이들의 눈요기 시간도 빼앗을 것 같아 눈치가 보였다. 과감히 나의 소비욕구를 포기했다. 아이들의 순서였다. 둘은 제각기 취향에 맞는 난전 앞에 서서 구경했다. 작은 아이는 소품, 큰아이는 노인복지관에서 나온 할머니들이 파는 예스런 그릇 앞에 섰다. 주차할 곳이 없어 멀리 주차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큰아이는 크리스털 그릇 몇과 코카콜라 기념 유리잔 두 개를 선택했다. 주방에 부족한 수납공간이 떠올랐지만 꾹 눌렀다. 취향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유리잔 하나를 위해서라도 서울에 갈 수 있는 중2기 때문이다.(이전 글에 아이의 서울 탐방기 글을 올렸다-맨 아래 링크를 보세요)

우월 보디라인을 자랑하는 콜카콜라 글라스

아이의 취향은 나와 결이 달랐다. 쓸데없는 그릇을 산 것이 여간 불만스럽지 않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안 볼 때는 툴툴 마주 보면 방긋거리며 감정을 숨겼다. 자신의 구매에 만족하는지 큰아이는 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차 안에서 크리스털 그릇을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빛을 반사하며 사진 찍기 놀이에 빠졌다. 괜한 짓을 한다 싶어 힐끔 쳐다보았고 아이는 연신 가을빛을 반사하는 그릇에 매료되었다. '저게 뭐라고 저리 좋아할까' 몇 번 뒷좌석을 바라보니 그릇이 가을을 닮아 유달리 반짝거렸다.

영롱한 크리스털 그릇

함께 구매한 콜라컵이 보통 컵은 아닌 듯 보였다. 피파 월드컵 기념으로 한정판 출시된 특별 보디라인이 괜찮아 보였다. 그 푸른빛 유리에 어린 하늘은 더 파랬다. 컵 하나 더는 연한 자줏빛이었다. 흔하지 않은 컵 2개를 천 원, 크리스털 그릇을 2개에 천 원에 득템 한 아이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당분간 서울이야기는 안 할 각이라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가 구매한 그릇이 가성비가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촌스러운 물건이 마음 한편을 따듯하게 한다는 게 이상하게도 친숙했다. 왜 샀을까 의아하던 마음이 수그러들자 애정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절대로 깨면 안 돼, 알겠지?" 1000원이 적다면 적겠지만 다시 그 할머니들 만나기 어려우니 이런 컵을 어디서 구하겠냐고 신신당부했다. 아이의 취향이 나의 취향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혼자 공방에 갔다. 10분 후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유리 어떻게 버려?" 내가 예감했던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났다. 얼음을 넣다가 푸른빛 콜라 잔이 넘어져 산산조각 났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놀람보다 하찮은 물건을 잃은 상실감이 더 컸다. 그게 뭐라고 화가 났다. 아이는 유리를 무사히 치우고 시무룩하게 전화했다. 마치 내 것을 잃은 것처럼 질타하는 말을 했다.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그 아까운걸". 타박하던 마음이 바뀌어 별스런 애정에 당황한 것은 나였다. 낯이 붉어졌고 수화기 넘어 주눅 든 아이에게 다시 말을 고쳐했다. "미안, 제대로 취향저격 잔을 깨서 많이 속상하지? 네 마음도 모르고 화내서 말한 거 용서해주라". 그제야 아이는 소중한 것을 잃은 속상함을 드러냈다. 몇 마디 위로와 함께 다음 달에 더 일찍 가서 할머니들을 수색하기로 꼭꼭 약속했다. (아직 그릇 둘과 코카콜라잔 하나가 남아서 다행이다)


오래된 그릇 찾습니다.
중2의 별스런 취향이거든요

https://brunch.co.kr/@zzolmarkb6sm/482

https://brunch.co.kr/@zzolmarkb6sm/515

https://brunch.co.kr/@zzolmarkb6sm/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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