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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08. 2019

30만원 레트로 컵이라고?

(서울 사람이 코 베어가더냐 2탄)

*이 글은 사회 문화면 기고글이 아닙니다. 문화현상에 대한 평론도 아닙니다. 그저 딸아이를 사랑하려는 어미의 발버둥입니다. 10대들, 10대 자녀를 둔 엄빠들, 아이가 곧 10대에 진입하는 엄빠들이 공감할 가능성이 높은 글입니다. 해당되지 않지만 너무 궁금하시다는 분만 읽어주세요. 뾰로롱~


레트로 느낌 물씬

복고가 유행이다. 레트로라는 고급진 말로도 불리는 문화현상이다. 기업이 추억팔이 정책으로 중년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려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1020이 더 열광하는 트렌드로 보인다. 촌스러움의 극치, 낡음의 미학을 도대체 누가 선호하겠냐고 반문했다. 인**그램에도 레트로풍 카페 인증이 즐비하다. 40대가 보기에 촌스럽기 그지없는 상품이 대세라는데 어안이 벙벙하다. 레트로라고 말하더니 이제는 뉴트로라고 한다. 왜? 도대체 왜 선호하는지 알고 싶어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그냥 쳐다보다가 눈을 내리깐다) 그냥 해. 오글거려


아, 네, 레트로풍이 선풍적 인기라는 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다시 째려본다) 그냥 하라고


아, 말이 짧으시군요. 군더더기를 빼고 물을께요. 레트로의 유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눈빛으로 필자를 제압하더니 벌떡 일어나 아래로 내려다본다.)

엄마, 쫌 그냥 하면 안 돼? 꼭 이래야 해?


야, c, 제대로 대답해주면 안 되냐? 이 나이에 글 써서 부귀영화를 누려 명예의 전당에 좀 올라보자는데 그걸 안 도와주냐? 정말. 내가 너를 십 년 넘게 키워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앗, 눈을 비비고 사방을 둘러본다. 지금 눈앞에 인터뷰어를 놓치면 10대들의 대표 감성을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나긋한 투로 말하려 코에 힘을 준다.)

아, 미안해. 미안. 재미있으라고 그랬지.


엄마는 이게 재미있어? 재밌냐고?


응, 이 나이가 어때서, 글 쓰다가 승부가 안 나면 유튜브로 옮길 건데 그땐 이보다 더한 걸 찍을 거니까 네가 영상 편집해주라. 그게 하려던 말이 아니고 복고풍 옷을 보면 어떤데?


그래, 바로 그렇게 물어야지. 짜증 나게. 어른들은 촌스럽다 그러는데 우리 세대는 그게 처음이잖아 그러니까 새로워 보이는 거지. 처음 보는 스타일인데 독보적이잖아. '힙하다'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너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 옷 입고 외출할 때 엄마가 촌스럽다고 뜯어말리면 그날 정말 힙한 거야" 이렇게 말이지.


진짜? 난 돈을 주고 다시 입으라면 절대로 안 입는다. 정말 촌스럽고 '안 본 눈 삽니다'인가 뭔가 그런 기분이 들어. 그리고 자기 애가 그렇게 입으면 엄마들끼리 "지못미"라고 애를 옷을 관리를 못해줘서 촌스럽게 다닌다 이렇게 서로 말한다니까. 너희들의 취향이 정말 이상하네


엄마, 이상하다고 말하지 말라니까. 우리한테는 복고풍이 처음이니까, 정말 새로운 유행이 찾아온 거야.

엄만 말이 안 통해. 나 엄마랑 말 안 할 거야. 괜히 불러내서는 짜증 나게 만들고. 엄마 미워!


나도 말 안 통하는 너를 왜 불러냈을까. 아이고. 중2아니랄가봐.


(레트로풍 유행에 대한 평소의 아이의 고견을 반영해 대화글로 상상하였습니다. 중2와 이런 대화조차 할 수 없! 습! 니! 다!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니라고 해두죠.)


아이가 서울로 여행을 갔다. 혼자 간다는 것을 뜯어말려 세미나 가는 아빠와 동행했다. 숙소에서 자는 것 외에 모두 혼자 돌아다닐 일정이라 걱정이 많았다. 아이는 걱정 1도 없었다. 구글에 의지해 길을 찾아 헤매 본 경험에서이다. 관련 이야기는 일전에 올렸다.

https://brunch.co.kr/@zzolmarkb6sm/482


아이는 왕복 기차표 10만 원에 2박 3일 투어를 할 때 쓸 용돈 10여만 원을 쓰고 돌아왔다. 제 고집으로 가는 것이라 차비와 숙박비20외에 자기 용돈을 썼다. 아이는 빈 털털이가 되어 돌아왔다.  맛집 위주로 짠내 투어처럼 돌아다녔다고 한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카드로 질러버리라 미리 말했다. 아이는 자주 갈 수 없는 서울투어 2박 3일 동안 동묘를 두 번이나 갔다. 1년 이상 동묘를 가겠다 노래 불렀기에 거창한 것이라도 지를 줄 알았다.


아이는 자신의 씀씀이를 조율하면서 동묘에서 진기한 것을 하나를 샀다. 2박 3일 후 귀환을 할 때 아이 손에는 오래 쥐고 있던 검은 봉지 하나가 있었다. 서울서 어떤 굿즈를 샀을까 궁금했다. 분명 올라갈 때 이것저것 구매각이라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아이손에 달랑 들린 것은 바로 양주잔 같은 투명 유리잔이었다. 금박이 둘러있었다. 동묘에서 중고로 5000원에 샀다고 했다. 중고 컵, 흔하고 흔한, 널리고 널린 유리컵을.

낡은 법랑컵이 주는 추억

"달랑 이거?" 가방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가 말하던 수많은 굿즈는 어디로 갔는지 엄마인 내가 다 실망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디자인의 고풍스러운 레트로 잔을 득템 했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아이의 웃음에 잔소리 폭탄을 보낼 수 없었다. 숙박비, 교통비에 기타경비까지 30만원이 넘게 들었겠지만 잘 골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순수 담백함을 담지는 못했지만 잔소리 대신 웃음으로 대처하는 수 밖에.


너의 취향을 존중한다. 숙박비까지 30만 원이 더 들어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구매해도 행복한 너의 비효율적인 낭만을 존중한다. 효율과 비효율은 사회가 그려놓은 잣대일 뿐이잖아. 엄마가 그런 잣대가 많을 뿐. 아이에게 강요할 수 없다. 잘 다녀왔다. 너의 낭만적 추억은 30만 원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가치로 네 가슴에 그려졌겠지.


그 컵 깨면 알지? 아 ~ㄹ 쥐? 내린 팔에 주먹을 불끈 쥔다.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북한도 멈추게 하는 중2 앞에서 엄마란 그래야 하는 법. 눈~치~채~지~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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