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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07. 2019

가을에 질문한다. 너를 반납한다.

가을 네깐게!

 


나는 곁에 훌쩍 다가온 가을을 반납하고 싶어 졌다. 올해는 가을이 없어지길. 글을 쓰다가 공방 문을 여는데 찬바람이 훅하고 부는 겨울이면 좋겠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될까? 상투적 가을 환영 코멘트를 쓰려던 나의 손목을 잡았다. 예전처럼 그렇게 가을을 보아야 하는지 나에게 질문했다. 가을쯤 반품한다고 지구가 망하는 것도 아니니 한 번쯤 가을을 스킵하는 건 어떨까?


체감온도가 갑자기 내려갔다. 얄팍한 웃옷을 입고 나갔다가 후회했다. 짧디 짧은 가을이 싫었다. 서늘한 촉감에 소름이 돋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을이 오기도 전에 시를 쓰고 먼 산을 쳐다보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이런 감정을 직면하자 속에서 거부감이 올라왔다. "가을이 너더러 뭐라 하니? 가을이 어때서? 가을이 없이 우리나라 자랑스러운 사계절에 한 꼭지를 어쩔 건데, 말이야 방귀야. 가을이 없는 게 말이나 돼? 그렇게 오래 살아오면서 가을이 없던 적이 있었어?" 질문 한번 거꾸로 해 본 죄로 자가 검열이라는 뭇매를 스스로에게 맞았다.


왜 나는 가을이 싫고 가을이 지겹다는 말을 거침없이 못 하는 것일까? 생각한다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인데 왜 불편할까? 가을이란 계절은 연필만 들어도 뭐가 써진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가을이 올해는 왜 싫을까, 가을을 거부하는 나를 스스로 왜 못 받아줄까?


내가 너무 많은 것에 붙들려 살고 있지 않을까? 가을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전에 사고의 틀에 갇힌 나를 발견했다. 가을을 반납한다는 제목을 써놓고 이 글을 쓰지 말라는 시상하부 뇌하수체의 명을 듣고 있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고 바르다고 생각한 무수한 것들이 어디서부터 연유한 지 고민하지 않고 부유하며 여기까지 살아온 것 아닐까?

가을입니다. 아, 뻔한 사진 말고 뭐 없을까요?

서툰 문장 엉뚱한 질문 하나로 가을은 멈추지 않는다. 봄부터 달려온 가을의 가속도를 막을 수 없다. 조물주의 자연법칙은 위대하다. 북반구에서 사계절이란 축복을 받으며 가을을 경험해왔다. 그런데 만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생트집을 잡는 이유는 가을때문이라기 보다 나를 묶던 타율적 기준에 항거하고 싶은 것 때문이다. 내가 거부하고 반납한다고 떵떵 거린 들 커다란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는 형국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납작한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의 파문을 일으켜보고 싶어 졌다. 나의 객기는 호수의 존재를 위협하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좋던 것들을 뒤집어 보고 익숙한 것을 거꾸로 보는 자유는 나에게 있다. 오늘 하루만 자유를 부려볼 작정이다

서걱거립니다

스스로 던지는 생경한 질문과 권리 주장. 우리 모두는 그렇게 반대로 생각하고 외칠 수 있는 존재기 때문이다.  가을은 풍성하고 고즈넉하다는 나만의 오랜 습관을 버리고 40년 이상 재생한 가을 감성 트랙을 일단 멈춰버릴 것이다. 시도라도 해보는데 돈이 안 들고 글을 쓰는 품 정도만 든다. 벌써 속이 시원하다.


몇 주 전부터 내 속에 장전되고 있던 가을 감성을 싹둑 잘라내고 견뎌봐야겠다. 가을 없이도 살수 있잖겠는가.  훠어이~훠어이! 과하게 출렁거릴 가을 감성을 반납하고 처박혀 메마른 줄글이나 딱딱한 시를 써야겠다.

이번 가을엔 콕 처박힐 거예요.

*분명 이렇게 쓰고 저는 가을에게 마냥 달려가 볼을 비비고 좋아라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관성을 묻는 질문카드는 사양할게요. 내일이면 "가을, 너를 격하게 환영한다"라고 정신줄 놓을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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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시에 매료된 후 여기까지 왔어요

도시 귀퉁이에서 글 공방을 운영해요

아이들을 보며 한숨 쉬거나 웃거나 그래요

글쓰기에 게으르진 않지만 늘 헤매는 중이죠


뻔한 글쓰기는 토할 것 같아 도대체 왜 쓰려고 하는지 먼저 물어봅니다. 요즘 질문하기에 빠졌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답을 가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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